KCCBR July 29, 2012
“사랑이 없으면...” [Without Lov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3:1-13
1.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그 교회 안에서 서로 지체 사이에 진정한 주님의 사랑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형제자매를 사랑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드러난 대로 고린도 교회가 사랑이 부족하여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은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돌아보아야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동시에 주님의 몸인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한 개인의 인격적이고 단독적인 결정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예수님을 믿는 동시에 교회의 회원이 됩니다. 한 사람의 성도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그 사이에 주님께서 임하시며, 그리하여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몸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아, 공동체에 소속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주님의 선물을 사랑이라고 제시한 것처럼(고전 12:31), 오늘 우리 교회에도 주님의 가장 필요한 선물이 동일한 사랑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저는 고린도전서 13:1-13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2.
고린도 교회는 방언과 예언과 지식 등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스스로를 평가할 때에는 참 좋은 교회요, 성숙한 성도들로 자신할 수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분열하였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교제를 할 때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온 음식을 다 먹는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은 식사 교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사도 바울은 일인칭 단수 대명사를 사용하여서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말씀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꽹과리가 되고
1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아무리 방언 기도를 잘하고, 여러 가지 언어 구사의 능력이 있으며, 말만 잘하는 것으로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말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의미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소음이며 공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실제적인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과 기도가 사랑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과 기도와 방언과 언어가 정말로 좋고 중요한 것이지만, 사랑이 있을 때에만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2절을 봅시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2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예언과 지식과 심지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사랑이 전혀 없다면 역시 아니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언은 오늘날의 설교나 성경공부 인도 혹은 상담이나 권면과 같은 것입니다. 지식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역사 등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태산을 옮길만한 특별한 은사로서의 믿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예언이나 지식이나 믿음이 그 자체로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예언, 진정한 지식,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공동체의 구성원을 사랑하는 실제적인 사랑이 있을 때에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3절을 봅시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3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심지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드려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드려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도 역시 구제하는 쪽에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 구제와 봉사는 오히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구제와 헌신을 외식, 나팔을 부는 것,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아 버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우리의 가정들과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왕국, 하늘나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준비와 훈련을 우리가 이 땅 위에 있는 동안에 이곳에서 서로 사랑하며 쌓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교회 안으로 부르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곧 사랑으로 행한다는 말씀과 정확하게 동의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랑의 영,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영, 형제자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으로 연합하여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4-8절 말씀에서 진정한 사랑의 성격을 열다섯 가지로 열거하며 제시하고 있습니다.
3.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4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i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1) 인내하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이 성숙할 수 있도록 인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2) 온유한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하여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조절되고 통제가 가능하도록 힘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3) 시기하지 않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이 잘 되었을 때, 그것을 나의 일처럼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4) 자랑하지 않는 사랑: 자신에게 어떠한 것이라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무분별하게 자랑함으로써 형제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5) 교만하지 않는 사랑: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도구로 삼음으로써 상처를 주지 않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갖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6) 무례하지 않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정서를 침해하지 않는, 예절과 품위가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7)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 나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이익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니다.
(8) 성내지 않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바꾸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9) 과거의 약점을 기억하지 않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과거의 경험이나 평판이나 선입견으로 단정하여 그 악하고 약한 모습에 가두어 두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6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10)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의 악한 것이 보일 때에도 무조건 좋다고 말하거나 눈을 감음으로써 그 구성원이 위험한 지경에 빠지도록 방치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11)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참된 진리 안에 사는 모습을 볼 때에 기뻐하고 격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7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12) 보호해 주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라입니다.
(13) 믿어주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믿어 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14) 기대하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바라보며,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미래의 성숙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15) 지켜주는 사랑: 공동체의 구성원을 악함과 약함으로부터 지켜내는 사랑입니다. 형제자매의 약함과 악함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성숙함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4.
8-12 말씀은 많은 분들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한 이후에야 이루어질 말씀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가 아직 성숙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되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나 오늘 우리에게나 이 말씀을 주신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해하고 적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대한 지금 여기서 이러한 사랑,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봅시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8 Love never fails.
But where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cease;
where there are tongues, they will be stilled;
where there is knowledge, it will pass away.
사랑은 영원한 가치가 있지만,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이 공동체를 튼튼하게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을 세워주는데 사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cy in part,
우리가 알고, 우리가 예언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이기 때문입니다.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0 but when perfection comes,
the imperfect disappears.
온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부정확한 지식과 인격에 근거했던 무책임한 말이나 행동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온전한 것, 진정한 사랑이 임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1 When I was a child,
I talked like a child,
I thought like a child,
I reasoned like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childish ways behind me.
우리가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신앙의 인격에서도 역시 어린아이의 상태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2 Now we see but a poor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고린도는 유명한 구리거울 생산지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당시의 아무리 좋은 구리거울이라 할지라도 온전하게 비추지 못하며, 또 그 구리거울 자체도 쉽게 녹이 슨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형제자매를 잘 알지 못하여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지적하고, 함부로 정죄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의 지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약점을 나의 약점으로,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주님께서 우리 자신을 아는 것처럼 그렇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지식이나 예언이 형제자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치유하여 주는 것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제 13절 말씀을 봅시다.
5.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3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셋으로 제시한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인데, 만일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다시 줄여서 제시하라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하는 그 생각과 행동과 말과 믿음과 구제와 예언과 방언과 소망과 그 모든 것이 유익한 결과를 맺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6.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요즈음은 “힐링”(healing)이 대세입니다. 그만큼 상처가 많은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치유는 용납과 용서와 인정과 격려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 공동체, 부부이든, 가정이든, 목장이든, 기관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친구이든, 우리가 속한 그곳에서의 지체가 치유함을 받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며, 또한 치유를 주기도 하고 치유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공동체 안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찔리심이 우리를 치유하는 사랑이 되었듯이, 이 한 주간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대상을 찾아서 우리도 상처받은 치유자로 다가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