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BR, March 4, 2012
누가복음 [Luke] 17:1-10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Increase Our Faith!]
1.
요즈음 우리 교회는 2012년 사순절을 맞이하여 두 가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순절 새벽기도회입니다.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모여서 찬양과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까지 모여서 함께 기도합니다. 어제 아침에도 새롭게 참여한 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새롭게 결단하시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사순절 신약성경 일독운동입니다. 이 사순절 동안에 전 성도들이 신약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더 잘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동전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 주님은 잃은 영혼을 하나라도 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애타는 심정을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또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심판의 장소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로 갈 수 있기를 바라시는 심정을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17장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하여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특별히 형제나 자매의 믿음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2.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1 Jesus said to his disciples:
"Things that cause people to sin are bound to come,
but woe to that person through whom they come.
우리 주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일들을 일으키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실족하게 한다.”라고 번역되는 “걸려 넘어지게 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형제자매를 “죄를 범하게 하거나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은 주님의 말씀, 그리고 먼저 믿어서 믿음이 성숙한 자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좋은 분들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문제는 먼저 믿은 사람이 반드시 믿음이 좋다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에서 믿음의 인도자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은 매사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과 모범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핑계를 대거나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2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be thrown
into the sea with a millstone tied around his neck
than for him to cause one of these little ones to sin.
바다에 그냥 빠져도 보통 사람은 바로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를 넘어지게 하는 이들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뜨려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 살벌한 말씀이죠? 그처럼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큰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3 So watch yourselves.
"If your brother sins, rebuke him,
and if he repents, forgive him.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등을 보고,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서 함께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는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들, 2절에서 소자라고 말씀하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믿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주님 안에서 바르게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꾸짖는다.”는 것은 죄를 죄라고 지적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안에서, 사랑으로, 눈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뒤에서 흉을 보는 대신에, 대면하여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자녀에게 하듯이, 그렇게 사랑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그 훈계의 말을 듣고 죄에서 돌이키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분명히 회개하였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놀라운 종교성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우리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은 의인의 범주에 넣고, 다른 이들은 죄인의 범주에 넣은 후에, 자신들이 죄인들을 멀리하면 자신들의 의로움이 유지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회복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4 If he sins against you seven times in a day,
and seven times comes back to you
and says, 'I repent,' forgive him."
하루에 일곱 번을 죄를 범하고, 일곱 번을 잘못했다며, 용서를 빈다면 그 회개와 용서를 비는 것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무한히 참아주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음이 성숙할 때까지 참아주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어린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백번씩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걸음마를 배우듯이 그렇게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 형제자매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입장, 믿음의 본을 보여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말씀을 돌아보면, 결국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다루어야 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권면하고 훈계하고 용서하되 한없이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잘못은 엄하게 대하고, 타인의 잘못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4.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5 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
아마 1절부터 4절까지는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제 5절부터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많은 제자들 앞에서 가르치신 후에, 사도들과 따로 있을 때에 더 깊은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지 않을 자신도 없습니다. 형제자매의 죄를 사랑으로, 눈물로, 안타까움으로 지적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하고 회복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자신들의 작은 믿음을 키워 달라고 우리 주님께 간청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죠?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6 He replied,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ulberry tree,
'Be uprooted and planted in the sea,'
and it will obey you.
사도들은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하였지만, 우리 주님은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들에게 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 뽕나무나무가 뽑혀서 갈릴리 호수에 가서 심기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불가능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1절에서 말씀하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면, 믿음이 약한 자들을 사랑으로 훈계하고, 용서하고, 회복하는 일을 통하여 공동체를 세워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진정한 믿음, 일하는 믿음, 실제적인 믿음, 사랑으로 인하여 작동하는 믿음,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믿음을 사도들에게 가르쳐주시고, 세워주시고 계심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사도들이 그러한 불가능한 일을 믿음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운 후에,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자기 의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사도들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5.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7 "Suppose one of you had a servant plowing or looking after the sheep.
Would he say to the servant when he comes in from the field,
'Come along now and sit down to eat'?
오늘날에는 종을 볼 수 없지만, 성경 시대에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하층의 서민들까지도 종을 하나 정도 소유할 정도로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밭을 갈고, 양을 치는 한 종을 등장시키십니다. 아마 사도들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기들 집에 있는 종들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그 종이 하루 일을 다 마치고 밭에서 돌아오면, “어서 이리 와서 나와 함께 먹자.”고 할 주인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시의 문화의 배경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에 모든 사도들은 “아무도 그렇게 할 주인은 없지요.”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이야기를 계속하십니다.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8 Would he not rather say,
'Prepare my supper,
get yourself ready and wait on me while I eat and drink;
after that you may eat and drink'?
주인은 종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먹을 저녁 식사를 요리해라. 그리고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을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물론 오늘날의 문화의 눈으로 보면, 참 몰인정한 주인으로 비쳐지겠지만, 이러한 본문은 반드시 그 시대의 문화의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사도들은 “당연히 그렇지요. 그것이 바로 종과 주인의 관계이지요.”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9 Would he thank the servant
because he did what he was told to do?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그 종에게 그 종이 명한 대로 다 한 후에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하겠느냐?” 이에 대하여서도 사도들은 “그렇게 할 주인은 하나도 없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이제 우리 주님은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읍시다.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0 So you also,
when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were told to do, should say,
'We are unworthy servants;
we have only done our duty.' "
이 말씀은 사도들이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라는 요청에 의하여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형제자매를 실족하지 않게 하며, 용서하고 사랑하고 회복시키는 진정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성숙한 제자들이 되었다고 할 때, 그 최종적인 단계, 그 완성의 단계,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결국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수준에 머물고 마는 그런 상태에 머물지 않게 하시려고 이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시고, 또한 해석까지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사도들에게 먼저 요구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종이라면, 너희는 먼저 내가 명령한 것을 다 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한 것 같아 보이는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으로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 주님은 참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는 자세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가 무익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말씀이 서로 맞지 않으면, 당연히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아무리 큰 종 같아도, 아무리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종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생명을 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형제자매를 실족하게 하지 않고, 우리의 믿음 공동체를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적으로 어린 형제자매를 다시 받아주며, 신앙으로 길러 나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6.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믿음 공동체, 기관과 목장이라는 믿음 공동체, 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라는 믿음 공동체에서 함께 주님을 섬기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저를 비롯하여 우리 교회에 믿음의 리더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는 아직 믿음이 약한 분들도 있습니다. 마치 가정이 어린아이들처럼 잘 넘어집니다. 그때 그들을 잘 인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리더들이 자신이 한 일로 주님께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서로 참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이렇게 말씀과 바라볼 본이 있기에 우리가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