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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과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삼상 22:1-8)

블레셋 가드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다윗은 유대의 수풀 아둘람 굴로 도망하였다. 그러자 그에게 약 400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자신의 부모를 모압의 왕에게 부탁하며 자신도 모압의 한 요새에 안주하려고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하여 다윗을 유대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하여 다윗은 다시 유대의 헤렛 수풀로 숨어들었다. 한편 사울은 피해망상증에 사로 잡혀 그의 신하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가?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누가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나 (1)?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David left Gath and escaped to the cave of Adullam.
        When his brothers and his father's household heard about it,
        they went down to him there.
(답)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해설) 블레셋의 다섯 도시 국가 중 하나인 가드에 잠시 망명하려고 하였던 다윗은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피하게 되었다. 사자를 피하여 호랑이 굴로 들어갔으나, 호랑이가 자신이 먹어야 할 먹이로 다윗을 보았었다. 그러나 다윗은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미친 사람인 것처럼 연기했고, 순간 호랑이는 다윗이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독이 있는 먹이로 생각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가드에서 피신해 와서 유대 산지에 있는 아둘람 굴로 도망하였다. 성경학자들은 아둘람 굴이 예루살렘 남서쪽 약 18 마일 정도에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곳은 다윗이 골리앗과 일대일의 대결을 하여 승리한 엘라 골짜기가 가까운 곳이었다. 또한 다윗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양떼를 이끌고 헤집고 다닌 산들의 하나였을 것이다. 사실 다윗은 베들레헴 근처의 산과 들을 매우 친숙하게 알았을 것이다.
        성경 지리학자들은 아둘람 동굴이 있는 근처에는 많은 동굴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망생활을 하는 다윗이 살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게릴라전을 전개하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곳은 동굴이 많이 있으면서도 손쉽게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는 샘과 시냇물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다윗의 행보에 대하여는 다윗의 집안 식구들이 관심 있게 들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된 이상 다윗의 식구들도 역시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일 다윗의 부모라도 사울에게 볼모로 잡히는 날에는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사울에게 가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가족 쪽에서 뿐만 아니라, 다윗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가족들을 자기가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가족을 잘 돌보는 것은 모든 지도자들에게 기본적인 책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윗의 형제들과 그의 온 아버지의 집안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다. 다윗은 자신을 포함해서 여덟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가 그중의 막내였다. 막내인 그가 이미 결혼을 하였으니 그의 형들은 모두 다 결혼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 아버지의 집안이란 아버지의 형제들도 포함하는 것이기에 이미 다윗의 가문 사람들 만해도 100 여명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다윗의 형제들은 처음에는 다윗에게 대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었었지만, 이제는 다윗과 공동운명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새는 베들레헴에서 이미 장로급이 되는 유지였으므로 그에게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는 기업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도 집과 토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부동산과 직업을 그대로 두고 다윗에게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락하고 평안했던 베들레헴에서의 삶을 버리고, 아둘람 굴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을 때, 다윗의 가족들은 많은 불평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불평을 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만, 다윗의 입장에서는 가족들의 불평을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다윗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몇 명 가량이었는가 (2)?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 이었더라
        All those who were in distress or in debt or discontented gathered around him,         and he became their leader.
        About four hundred men were with him.
(답) “사백 명”
(해설)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다윗의 가족 친지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무엘상 기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고 한다.
        (1) 환난 당한 자들: 사회의 정의가 땅에 떨어져서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일을 하고 살아도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서 강도떼를 만나거나,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서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2) 빚진 자: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빚을 진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져서 빚을 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사들의 정치에서 왕의 정치로 통치 방식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만 같아도, 사실은 어느 시대나 이렇게 빚진 사람들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빚을 지고 도저히 그 빚을 갚지 못해서 결국은 다른 사람의 노예로 팔려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몰려들게 되었다.
        (3) 마음이 원통한 자들: 부자들에게, 강한 자들에게, 가진 자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마음에 원한을 품고 한숨과 절망과 분노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또한 다윗에게로 나왔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다윗에게로 몰려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현 정권인 사울의 정권이 무너지고 다윗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길 기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아둘람 굴에서 고통을 겪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새로운 지도자는 그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꿈을 주는 자이다. 지도자가 꿈을 주지 못하면,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꿈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지도자가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가득하여 그 소속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삶의 목표와 방향과 의미를 바르게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다윗을 자기들의 지도자로 받들었다. 다윗은 비록 20세 초반의 나이였지만, 이미 그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드러났기 때문에 다윗의 리더십에 대하여는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결국 다윗은 불순분자, 불평분자, 사회적인 문제아들, 사회적으로 불온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관 12, 3세에 기름을 부으셨을 때에는 왕이 된다는 것이 그냥 마냥 멋진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집이나 성도 아니고 유대 수풀의 어둠침침한 굴에서 문제 많은 사람들의 지도자가 된 것이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참 한심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바로 그 사람들을 잘 섬겨서 그들로 하여금 살맛나게 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윗은 결코 율법적으로 꽉 막힌 답답한 사람이 아니었고, 신축성이 있게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윗에게 몰려 든 사람들의 총 수가 400 여명 가량이라고 하였다. 이 숫자에 다윗의 가족 사람들이 포함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불분명하지만, 그것이 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미 다윗의 가문의 사람들도 역시 불평분자, 불순분자, 억울한 자, 원통한 자의 입장에 서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떤 면에서 세상에서 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주님 삼아서,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주시는 이 험한 환경이 아둘람 굴과 같을지라도 앞날을 보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의 자녀들의 되도록 하자.
        우리의 인생에서 아둘람의 시대가 있을 수 있다. 몸은 가장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마음은 그때가 가장 평화스러웠고,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시절이었던 그런 시대이다. 그때 오직 자연 속에서 주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그 시절이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때의 순수했던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 교회는 곧 아둘람 동굴 공동체 같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 사람이 와도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빚진 자, 환난을 당한 자, 원통한 일을 당한 자, 끊지 못할 나쁜 습관이 있는 자, 불평분자, 세상에서 적응을 못하는 자, 어떤 사람이라도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서 사랑을 체험하고, 섬김을 체험하고, 죄 용서함을 체험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둘람의 동굴에서 다윗과 함께 훈련받은 사람들이 물론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람들이고, 다윗의 신하들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 교회에서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의 왕국의 일꾼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새롭게 오는 사람들의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한다. 그냥 받아 주어야 한다. 그냥 품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때가 되면 상대가 변하는 것이다. 절대로 정죄하는 눈으로, 자세로 새로운 사람들을 보지 말라. 과거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말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어떻게 해주기를 청하였는가 (3/참조, 룻 4:21-22; 딤전 5:8)?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From there David went to Mizpah in Moab
        and said to the king of Moab,
                "Would you let my father and mother come and stay with you
                until I learn what God will do for me?"
(답)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해설) 그러나 다윗은 곧 아둘람의 동굴 생활이 그의 연로한 보모에게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어디라도 갈 수 있었겠지만, 이미 다윗의 부모들은 연로하여서 최소한의 문명이 있는 곳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서 이번에 다윗은 서쪽으로 블레셋이 아니라, 동쪽으로 모압의 왕을 찾아갔다. 그러면 이번에는 왜 모압인가? 블레셋에서 그렇게 고통을 당했으면 그만이지 이번에는 왜 모압을 찾아갔는가? 모압은 다르다. 왜냐하면 모압은 바로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보아스와 룻 --> 오벳 --> 이새 --> 다윗 (룻 4:21-22). 그 이후로 다윗의 가문과 모압은 혈연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다윗의 마음속에 모압에 대하여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압의 수도는 미스베였다. 다윗은 담대하게 모압 왕을 찾아갔다. 지난 번 블레셋에서처럼 자신의 신분을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모압의 왕에게 자기의 부모를 의탁했다. 다윗은 이런 면에서 효자였다. 비록 자신은 험한 환경 가운데 살지라도 부모는 평안하게 모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잘 섬기라고 명하였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예수님도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막 7:10-13).
        다윗이 그러한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종의 일을 하실 것을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현재의 고통을 참고,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했던 것이다. 우리가 현재 당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4. 다윗이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모압 왕과 함께 있던 동안에 다윗은 어디에 있었는가 (4)?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So he left them with the king of Moab,
        and they stayed with him as long as David was in the stronghold.
(답)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해설) 그리하여 다윗은 그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하였다.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 모압의 왕은 다윗이 차세대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또한 예측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부모님을 모압 왕에게 맡기고는 유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미스베 근처에 있는 어느 요새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면 다윗을 보고 다윗에게로 몰려들었던 400 여명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그대로 유대에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어떤 면에서 부모님을 핑계대고 모압 땅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였을지도 모른다. 모압 땅에서 안주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는 때가 있다.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는가?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무엇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렀는가 (5)?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But the prophet Gad said to David,
                "Do not stay in the stronghold.
                Go into the land of Judah."
        So David left and went to the forest of Hereth.
(답)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해설) 다윗에게 함께 하였던 사람들 중에 선지자 갓이 있었다. 그 또한 사울의 시대가 끝났고, 다윗의 시대가 곧 올 것을 알고 다윗과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예민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었다.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대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은 모압의 한 요새에서 한없이 평안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과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선지자 갓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는 이스라엘 경내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역시 자신의 지파의 땅이고, 자기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유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본인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인데,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한없이 평안함을 추구하고 있을 때, 속으로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몸이 불편하고, 불안한 그곳으로 가야만 마음이 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가 마치 그랬었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었을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무엇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는가 (6/참조, 삼상 18:10-11; 19:9-10; 20:33)?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Now Saul heard that David and his men had been discovered.
        And Saul, spear in hand, was seated
        under the tamarisk tree on the hill at Gibeah,
        with all his officials standing around him.
(답) “단창”
(해설) 사울은 이제 다윗이 유대 땅에서 숨어서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울의 다윗에 대한 추적이 이제 시작된다. 앞으로의 사울의 전 생애는 다윗을 추적하는데 바쳐진다. 물론 중간 중간에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지만, 전쟁 중에도 다윗을 찾아 나설 정도로 다윗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사울의 생애는 실로 다윗에 대한 질투에 사로 잡혀서 사는 것이 되었다. 우리가 누구를 질투하여 미워하면 사실은 그 사람에게 매여서 살게 되어 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뿐이다. 다만 사랑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미워하는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의 시각이 우리의 보는 것에만 치우치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사울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반복되어서 나오는 것이 그는 그의 손에 창이나 단창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늘 창이나 단창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그의 신하들이, 그의 병기 든 자들이 그의 곁에서 그를 보호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창이나 단창을 자기 손에 들고 있어야 마음이 평안하였다. 사실 사람이 잠을 잘 때와 용변을 볼 때와 사랑을 나눌 때는 가장 취약할 때이기도 하다. 그때에는 무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할 때에는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울은 언제나 창이나 단창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사울은 피해망상증 (paranoia)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을 먼저 죽이기 이전에 자신이 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창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피해망상증에 걸리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믿게된다. 나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며 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사무실에 독가스를 뿌렸다고 한다. 그를 보고 웃으면 죽이려고 하는 마음을 숨기려고 웃는다고 한다. 그를 보고 친절하게 대하면 친절하게 대하고 그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보고 웃지 않으면 죽일 마음이 드러나서 웃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나면 곧 내가 피해망상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울은 에셀 나무 아래 앉아있다. 에셀 나무는 우리나라 말로 위성류(渭城柳)라고 하는 관목이다. 사울은 앉아 있고, 신하들은 그의 곁에 모셔 섰다.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며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7)?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Saul said to them,
                "Listen, men of Benjamin!
                Will the son of Jesse give all of you fields and vineyards?
                Will he make all of you commanders of thousands
                and commanders of hundreds?
(답)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해설) 사울은 다윗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으므로 자기의 신하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이미 자기의 신하들을 여러 지파에서 골고루 임용하지 못하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만 세웠다. 그래서 자기의 신하들을 베냐민 사람들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통치에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자기 지파의 사람들로만 신하들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 마당에 다윗은 유다 지파에 속한다. 다윗이 인기를 얻자, 사울은 다윗에게 사로잡혀 있으면서, 자기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인 다윗이 왕이 되면 그가 베냐민 지파이며, 나의 신하들이었던 너희 각자, 각자에게 밭이나 포도원을 주거나, 너희를 군대의 천부장이나 백부장으로 삼을 것 같으냐? 천만의 말씀이다. 너희들은 다윗이 왕이 되면 다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내가 다윗을 잡는 일에 함께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사울의 생각으로 보면, 자기의 말이 너무나도 맞는 말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8. 사울은 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또 어떻게 하는 자가 없다고 하였는가 (8)?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Is that why you have all conspired against me?
                No one tells me when my son makes a covenant with the son of Jesse.                 None of you is concerned about me or tells me
                that my son has incited my servant to lie in wait for me,
                as he does today."
(답)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해설) 8절은 사울의 편집광적인, 혹은 피해망상적인 증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구절이다.
        (1)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어느 신하들도 서로 공모하여 사울을 대적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사울이 그냥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피해망상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2)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하였다는 것을 사울에게 누군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물론 요나단이 집적 알려 주었을 수도 있다. 사울은 신하들이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3) 사울은 신하들이 자기를 위하여 슬퍼해 주어야한다고 한다. 사울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신하들도 동일하게 느끼기를 요구한다. 곧 다윗을 잡지 못하면,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고, 그때 처량한 입장에 설 것을 생각해서 지금 처량하고 슬픈 입장에 있는데, 신하들이 하나도 그를 위해서 슬퍼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해망상증의 증상의 압권이다.
        (4) 사울은 요나단을 믿을 수 없었다. 요나단이 자기 신하를 선동하여 매복하였다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어야 하는 요나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다윗을 그렇게 좋아해도 다윗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아버지 사울 왕을 지켜드려야 할 것을 요나단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자기의 두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와 함께 길보아 산에서 전사할 때까지 아버지를 보살펴 드렸던 것이다. 이런 요나단의 마음을 사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또한 피해망상증의 증세의 압권이 아닌가? 이런 사울을 보면 왕 자리에 대하여 연연해함으로 오는 모든 증상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이미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지키려니 이렇게 힘든 것이다. 나의 자세도 돌아보는 기회가 되자.

9.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 오늘의 기도 제목 ***
1.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2.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를 세워 나가게 하소서.
3. 질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소서.
4. 교회 부지 매입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하소서.
5. 윌리엄 세인트 형제를 보호하시고, 이라크에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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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44) (1/19/05)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21:10-15)

    제 44 과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삼상 21:10-15) 놉에서 음식과 무기를 구한 다윗은 서쪽으로 달려 국경을 넘어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도망하였다. 사울의 적이 블레셋이고,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생각으로 블레셋으로 갔던 것...
    Date2005.01.26 Bywebmaster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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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43) (1/12/05)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21:1-9)

    제 43 과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삼상 21:1-9) 요나단과 작별한 다윗은 황급히, 그러나 본격적인 도망 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먹지도 못하였고, 자신을 방어할 무기도 갖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놉으로 가서...
    Date2005.01.18 Bywebmaster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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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42) (1/5/05) "피차 입 맞추고 같이 울되" (20:35-42)

    제 42 과 “피차 입 맞추고 같이 울되” (삼상 20:35-42) 요나단은 무거운 마음을 숨기고 활과 화살을 챙기어 작은 소년을 데리고 다윗과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로 나간다. 소년이 떠난 후 요나단과 다윗은 석별의 정을 나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두...
    Date2005.01.0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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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41) (12/29/0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20:18-34)

    제 41 과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삼상 20:18-34) 다윗은 요나단에게 사울의 마음을 분명하게 읽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을 들에 숨게 하고 아버지 사울의 마음을 읽는다. 요나단은 사울이 분명히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Date2005.01.0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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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40) (12/22/04)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20:1-17)

    제 40 과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삼상 20:1-17) 라마 나욧으로 피신하여 사무엘을 통하여 새 힘을 얻은 다윗은 다시 돌아와 요나단을 만난다. 다윗은 자기의 처지를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요...
    Date2004.12.2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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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39) (12/15/04)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19:18-24)

    제 39 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삼상 19:18-24) 요나단과 미갈의 도움으로 사울에게서 피한 다윗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가 함께 라마의 나욧에 거하게 되었다. 사울은 다윗을 잡아오라고 세 차례나 사자들을 보내었지만, 그의 사자들은 모두다 ...
    Date2004.12.2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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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38) (12/8/04)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19:1-17)

    제 38 과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삼상 19:1-17) 사울은 이제 요나단과 그의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공공연하게 명한다. 이제 다윗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사울의 이성에 호소하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
    Date2004.12.08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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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37) (12/1/04) "사울이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18:17-30)

    제 37 과 “사울이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삼상 18:17-30) 사울에게는 두 딸 메랍과 미갈이 있었다. 사울은 먼저는 메랍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메랍을 걸고 다윗에게 블레셋 진을 공격하게 하고, 블레셋의 손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던...
    Date2004.12.01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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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36) (11/24/04)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18:1-16)

    제 36 과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삼상 18:1-16)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이후, 두 가지 커다란 인간관계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첫째로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여 그와 언약을 맺게 된 것이다. 둘째...
    Date2004.12.01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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