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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갈라디아서 Galatians 6:11-18

KCCBR, November 26, 2023, 48th Sunday

(21)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A New Creation

갈라디아서 Galatians 6:11-18

 

서론 Introduction: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See what large letters I use as I write to you with my own hand!” (11).

오늘로 우리는 스물한 번에 걸친 갈라디아서 본문 설교를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복음으로부터 갈라디아 여러 교회 성도를 보호하기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만 얻는 의로움을 이 서신을 통하여 다시 천명하였습니다. 5:1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 자유의 대헌장이라 불립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는 그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으로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은 결코 할례를 받는 것이나 할례를 받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며 전혀 새로운 차원임을 오늘 본문인 6:11-18에서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눕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을 마침에 있어서 11절에서 서신 대필자에게 펜을 받아 본인의 손으로 큰 글자로 쓰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큰 글자로 쓴 부분이 11절뿐인지, 아니면 11절부터 마지막 18절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고대에는 저자가 구술하고, 대필자가 기록하는 일은 매우 보편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구술할 때, 더디오를 대필자로 삼았습니다. 로마서 16:22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그가 그의 모든 서신에서 대필자를 명시한 경우는 이 로마서를 기록한 더디오가 유일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그의 여러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직접 자기 손으로 몇 글자를 씀으로 자신 저작의 서명으로 삼았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의 마지막 부분인 3:17은 그 좋은 증거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그러면서 12절부터 다시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을 구술함으로써 이 끝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1. “박해를 면하고 육체를 자랑함” “Avoiding persecution and boasting flesh” (12-13).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2 Those who want to make a good impression outwardly are trying to compel you to be circumcised. The only reason they do this is to avoid being persecuted for the cross of Christ.

먼저 사도 바울은 12절과 13절에서 유대주의자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동기를 분명하게 고발합니다. 그는 12절에서는 그들이 피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13절에서는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그는 먼저 그는 유대주의자들을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라 묘사합니다. 자신과 타인의 육체에 할례의 흔적을 만들려 하기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로 불렸습니다. 할례의 효력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만 미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할례와 율법의 파이다고고스로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심으로 복음을 완성하였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할례와 율법에 가두려는 유대주의자들은 아직도 유대교 안에 갇혀 노예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왕국 유산을 받을 자녀의 권한을 거부하고 유대교 안에 갇힌 노예 상태에 머물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거부하고 할례와 율법 안에 자신을 스스로 가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박해를 면하려 하는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5:11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하면 어찌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의 걸림돌을 지고 박해를 받는 것은 기본값임을 분명히 깨달읍시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선행을 교회와 이웃에게 행함으로 칭송을 받는 동시에, 십자가의 걸림돌로 인하여 박해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자신이 받은 할례에 머물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할례를 강요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걸림돌을 회피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수치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3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발가벗겨져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발가벗고 따름으로 받는 수치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수히 그 수치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인도 있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날 때, 그에게는 치욕과 박해가 따라옵니다. 우리가 그런 치욕과 박해를 받은 마지막 때는 언제였습니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지워주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치욕과 박해입니다.

 

그리고 이 치욕과 박해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의로움의 복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21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대속의 혜택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치욕 받으신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 바로 복된 소식,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여 함이라

13 Not even those who are circumcised obey the law, yet they what you to be circumcised that they may boast about your flesh.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는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는 회피하면서 대신 이방인을 할례받도록 한 공적을 자랑하고자 함입니다. 정직한 유대인은 자신이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룰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할례받도록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또 하나의 노예를 만들 뿐입니다.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 복음 안에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적을 자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여기서 저는 다시 베드로전서 410절과 11절을 인용하여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 즉 관리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시고, 그 은사대로 은혜를 나눌 직분을 주십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설교, 성경 공부, 그룹 인도 등에서 우리가 전하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단지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일 뿐입니다. 메신저는 그를 보낸 이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메시지에 무엇인가를 더 해도 죄, 덜어도 죄입니다. 또 교회 안과 밖 어느 곳에서 어떤 봉사나 사역해도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관리인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 능력이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이미 교만입니다.

 

자신의 공적을 쌓으려는 것이 바로 종교요, 오직 주님의 공적만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사역할 때, 누구로 말미암아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11절 뒷부분을 봅시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관리인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2.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a new creation” (14-16).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14 May I never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그래서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치욕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날마다 죽는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도 누구 때문에라는 시로 사도 바울과 똑같이 자신도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누구 때문에 주님 십자가 지셨나요?

무엇 때문에 주님이 못 박히셨나요?

 

나를 위하여 주님 십자가를 지시고

나의 자랑이 되시기 위해 못 박혀 죽으셨으니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자랑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자랑하는 것,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만 의지하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5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what counts is a new creation.

그래서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이 말씀은 5:6과 짝을 이룹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것,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만 가능합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5:17에서 사도 바울이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이러한 믿음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수이자 핵심입니다. 할례를 포함한 그 어떤 종교적 의식이 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각자의 믿음을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었습니까? 오직 그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는 사람만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구원의 믿음이 열매를 맺을 때, 그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이며, 그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두는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태어나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와 우리에게 손에 쥐어주듯이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를 마치는 오늘 우리 각자는 오직 이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붙들고 그 안에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6 Peace and mercy to all who follow this rule, even to the Israel of God.

이제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할례와 율법의 규례를 내세우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규례를 내세웁니다. 이 규례를 따라 사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인간의 혈통으로서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이스라엘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혈통의 조상이 아브라함인가, 아닌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체적 혈통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 더 유리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오직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도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지 않으면 그 이점이 하나도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이 아니더라도 예수 안에 믿음을 둠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는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3. “예수의 흔적” “the marks of Jesus” (17).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7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Jesus.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할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얻는 핍박의 상처를 예수의 흔적이라고 부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그가 자신 몸에 남아있는 예수의 흔적을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흔적이라 번역된 스티그마”(στίγμα, stigma)는 상표(brand)나 표시(mark)를 의미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마치 영성이 깊은 사람이 초자연적으로 몸에 이러한 흔적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유대주의자들은 핍박받지 않는 할례를 전했지만, 자신은 십자의 걸림돌을 전함으로 받은 핍박의 상흔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고백하고 따름으로 가족이나 이웃에게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나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의 흔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는 또한 각자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예수의 흔적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모하는 하늘의 할례, 영적인 할례입니다.

 

결론 Conclusion: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he with your spirit, brothers. Amen” (18).

이제 사도 바울은 18절에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형제라 부르며 그들의 심령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로 그의 서신을 마칩니다. 주의 은혜가 우리 심령에 있을 때,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자랑합니다. 자신을 신뢰하거나,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고, 주님의 공로만 의지합니다. 이제 반주자께서 찬송가를 연주하시는 동안 나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의지함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가 이 한주도 우리 마음을 지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우리가 성령께서 맺으시는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시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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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CBR, December 10, 2023, 51th Sunday 말씀대로 As You Have Said 누가복음 Luke 1:26-38 서론 Introduction: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In the sixth month, God sent the angel Gabriel to N...
    Date2023.12.09 ByWebmaster Rep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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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6/23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A New Creation

    KCCBR, November 26, 2023, 48th Sunday (21)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A New Creation 갈라디아서 Galatians 6:11-18 서론 Introduction: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See what large letters I use as I write to you with my own h...
    Date2023.11.26 ByWebmaster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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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9/23 심은 대로 거둔다 You Reap What You Sow

    KCCBR, November 19, 2023, 47th Sunday (20) 심은 대로 거둔다 You Reap What You Sow 갈라디아서 Galatians 6:1-10 서론 Introduction: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
    Date2023.11.18 ByWebmaster Rep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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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23 성령의 열매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KCCBR, November 29, 2023, 46th Sunday (19) 성령의 열매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갈라디아서 Galatians 5:16-26 서론 Introduction: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So I say, live by the Sp...
    Date2023.11.11 ByWebmaster Rep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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