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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가장 큰 계명
text 마태 Matt. 22:34-40
date Feb. 24. 2013
preacher 최정인 목사
title2 The Greatest Commandment
youtube http://youtu.be/QIIw-sV9i0I
KCCBR, February 24, 2013 
마태복음 Matthew 22:34-40
“가장 큰 계명” 
"The Greatest Commandment"










1.
성경은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원은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과거의 구원인 칭의의 구원이 믿음의 구원이고, 미래의 구원인 영화의 구원이 소망의 구원이라면, 현재 우리가 매일 이루어야 하는 성화의 구원은 사랑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금년에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는 말씀을 받은 것은 사실 금년 한 해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날까지 매 순간마다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2:34-40 말씀을 통하여 사랑이라는 제일 큰 계명에 대한 우리의 주님의 말씀을 숙고하도록 하겠습니다. 

2.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4 Hearing that Jesus had silenced the Sadducees, 
the Pharisees got together.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바로 그 주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유대교에는 몇 가지 종파가 있었는데, 그 중의 가장 중요한 두 파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였습니다. 사두개파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이루어진 종파입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의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천사나 부활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앞에는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곤란한 질문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여러 사람과 결혼하였다면 부활의 세상에서는 누가 진정한 배우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부활이 정말 있다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곤란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믿고 있고,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모세오경이 아닌 다른 성경을 통하여 그들에게 답변하였다면, 그들은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을 이미 다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에서 한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호렙 산에서 가시떨기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모세에게 소개하시면서, 당신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 세상의 차원에서 이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다 죽었습니다. 그 아브라함이 섬기던 하나님을 그의 아들 이삭이 다시 섬기니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삭이 죽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야곱이 섬깁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영원의 세상에서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의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입니다. 이제는 이삭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요 또한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야곱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으로 옮겨 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서는 위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삼 세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서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삭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진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손자, 손녀가 없으시다. 하나님에게는 모두가 다 자녀다”라는 것입니다. 한 번 이 세상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관문 너머 영화로운 세상에서는 모두가 다 형제자매의 입장이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원래의 질문, 이 세상에서 결혼을 많이 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누가 진정한 배우자냐고 물었던 그 질문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가족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함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나 형제나 부모의 관계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형제자매가 되어서 동일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배우자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도 영원토록 그 사람과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고민하는데, 그런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곳에서 천사들처럼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성경도 바르게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바르게 믿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기뻐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세습적으로 이어받는 제사장, 레위인 계급으로 이루어진 것에 반하여,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 율법을 행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규정을 정하여 그대로 행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성경과 유전들을 글로 써서 후세에 보존하는 것을 자신들의 생애의 사명으로 삼은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에스라로부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 교사들, 율법을 연구하고 필사하는 서기관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 도시와 마을마다 지어진 회당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얼핏 보면 아주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행함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려고 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처럼 의롭지 않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정도로 바리새인들은 행함에 있어서도 타인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이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의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바르게 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곳곳에서, 때마다, 사건마다,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이 또한 우리가 오늘날 가질 수 있는 문제점도 되지는 않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하나님께 올라가는 계단을 쌓아 올리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의 조항들을 정리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모두 613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613가지의 율법은 다시 “하라”는 율법(the affirmative precepts)이 248 가지, “하지 말라”는 율법(the negative precepts)이 365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248이라는 수가 인체의 뼈의 수라고 생각했고, 365라는 수는 인체의 혈관과 신경의 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합한 613이라는 수는 다시 십계명을 이루는 알파벳을 합한 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613개의 하라는 율법과 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이르겠다는 것은 마치 이 땅으로부터 하나님이 계신 곳까지 갈 수 있는 613개의 계단과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순종과 열정으로 이 계단을 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철저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동기도 보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계단을 하나라도 더 쌓아올렸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공로(credit)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만큼 자만하고, 자부하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하면 잘 할수록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율법의 체계인 것입니다. 결국 이 율법의 체계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르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영광의 체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면 왜 이러한 율법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율법대로 행해서 하나님께 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율법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만을 변화시키시려고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첫 사람 아담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죄로 인하여 그 성품이 온전히 더러워졌고, 그로 인하여 온 인류는 죄로 인하여 철저하게 오염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그리고 각 민족에게 주신 양심과 도덕과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려주어야만, 그 환자가 그 의사의 치료를 받아들입니다. 마찬 가지로 온 인류를 예수님 안에서 다시 창조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그 온 인류가 죄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인하여 사망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바로 그 율법의 체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의 구속의 죽으심을 통하여 모든 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도 값을 낼 필요가 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온 인류를 다시 살리는 그 복음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곳곳에서, 때마다, 사건마다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을 한 마디도 더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기뻐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사두개인들과 갈등과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일이 사두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과 생각과 체계가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재빠르게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구약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부활이나 천사나 영생 등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대로 논쟁을 하여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35절을 봅시다.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5 One of them, an expert in the law, tested hem with this question: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test)하여, 예수님이 사실은 그렇게 훌륭한 선생이 아니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거짓 교사라는 것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을 잠잠하게 만든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번에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잠잠하게 만들어서, 더 나아가 완전히 죽일 죄목을 찾아 죽임으로써, 더 이상 백성들을 이끌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겠다는 사악한 계획을 가지고 예수님께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서 한 율법사, 즉 율법에 정통한 한 랍비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한 질문은 무엇입니까?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예수께 몰려왔던 바리새인들을 대표하여 한 율법의 전문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낸 문제는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 자신이 답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은 시험이요, 자신이 답이 없어서 물어보는 것은 질문입니다. 이 율법사가 이 문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613가지의 율법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대하여 사실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할례를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정결하게 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잘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부터 잘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엄밀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을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말해 보라면 무엇인가 답해야 한다면, 아마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제1계명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율법사는 어떤 스스로 어떤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나머지 바리새인들은 어떤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들 각자는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떤 답을 하실지 귀를 쫑긋이 세우고, 눈에 크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자신들을 만족시키는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거짓 선생으로 몰아세울 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무엇이라고 답하셨습니까? 

3.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예수님은 신명기 6장의 그 유명한 쉐마(shema)에서 먼저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 말씀은 모세오경의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 6:5에 나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 말씀을 쉐마라고 하는데, 이것은 4절을 시작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쉐마”(들으라)이기 때문입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그의 전존재를 다 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에 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쉐마 말씀은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이 맨 처음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어린이들, 유대교를 믿는 가정의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씀이 바로 쉐마입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널리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치고,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문자적으로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계명이 첫째가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가장 중요한 계명을 놓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자칫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이와 동일한 과정 가운데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신을 발견했던 이가 바로 16세기에 유럽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나아갈수록 자신의 죄가 더 드러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원을 이루려는 철저한 이기심과 욕심, 더 나아가 그것이 이루려하면 오히려 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철저하게 절망하면서도 하나님을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더 좌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으로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과 사랑의 관계를 이루시는 것을 항상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장소에서 시간을 따로 내어서 드리는 예배도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표현이 아니라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그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자칫 잊고 있었던 율법의 가장 핵심적인 계명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께 질문을 하면, 예수님은 그 질문 자체를 바꾸시거나, 그들이 원했던 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만큼은 바로 그 문제에 딱 맞는 답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아, 그래 맞아. 내가 오늘날까지 율법대로 살려고 했던 것이 나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나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답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하던 의심의 눈초리를 자신들을 돌아보도록 자신들에게로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을 돌아보고, 순간적으로 자신들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어떠한지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맞는 답이고, 자신들이 평상적인 마음만 갖고 있다면, 나사렛 예수가 자신들보다 나은 율법교사인 것을 그들의 마음속에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떠한 항변을 하거나, 덧붙이거나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율법사가 묻지 않았던 것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39절을 읽읍시다.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예수님은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을 물어 보았으므로 이미 답을 다 하신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말씀은 첫째 계명만으로는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을 다 말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계명도 첫 번째와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첫 번째 계명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은 위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으로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번에도 모세오경의 세 번째 책인 레위기 19:18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우선 이 계명도 첫 번째 계명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째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지난주일에 보았던 것처럼 할례나 기타 까다로운 규정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연결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아마 말문이 막혔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열정을 가지지 않는 “땅의 백성들”이라 불린 일반 백성들을 사랑하기는커녕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동료 바리새인들만이 이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율법이요, 종교이지, 참된 경건도 아니며 참된 살아있는 인격적 관계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자녀들인 이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요, 모순이요, 하나의 종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세세히 지키느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망각하고, 더욱이 이웃들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자신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공격하여 무너뜨리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을 대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바른 질문을 바르지 않은 동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0절 말씀을 봅시다.

4.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이 두 계명” 즉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약이라는 말을 영어 NIV 성경에서는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다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하면 율법(토라)인데, 이는 또한 모세오경만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을 좀 더 정확하게 부르면 율법(토라)과 선지자(나비임)입니다. 구약성경을 구성하는 세 가지 부분을 다 부르는 정확한 호칭은 율법(토라)과 선지자(나비임)과 시편(성문서, 케투빔)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모든 말씀들을 율법에서만 인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지자들을 언급하심으로써 구약성경의 범위에 대하여 사두개인들보다 바리새들이 옳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을 의도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은 나무를 보다가 숲을 보는 것을 잃는 위험 가운데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숲을 보는 것과 나무를 보는 것에서 중요성을 말하자면, 항상 숲을 보는 것이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리새인들에게 전존재를 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5.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로 유명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행하라”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방종을 조장하는 말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자매를, 이웃을, 나아가 원수를 미워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는 말씀은 우리가 형제자매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으로, 그리고 우리가 매일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웃과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분투합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구주이시며, 주님이시며, 또한 스승이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듣고 따라오라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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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CBR, June 23, 2013 사도행전 [Acts] 17:1-9 “예수는 그리스도” [Jesus is the Christ] 1. 모든 것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는 법칙을 배워나간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무엇을 알고 배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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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버지 Father" - 마태복음 Matthew 7:7-12

    KCCBR, June 16, 2013 마태복음 [Matthew] 7:7-12 “아버지” [Father] 1. 한국어로 “아버지”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어원은 “압”이며, 어머니의 어원은 “엄”이라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부”(父)와 “모”(母)라고 합니다. 영...
    Date2013.06.17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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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동역 Co-work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 1:1

    KCCBR, June 9, 2013 데살로니가전서 [Philippians] 1:1 “동역” [Co-work] 1. 우리가 지난주일에 나눈 이야기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지역 ...
    Date2013.06.09 By관리자 Reply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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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동참 To Share" - 빌립보서 Philippians 4:15-20

    KCCBR, June 2, 2013 빌립보서 [Philippians] 4:15-20 “동참” [To Share] 1. 세상을 살 수 있는 힘은 함께함에서 옵니다. 문제는 누구와 무엇과 함께함으로 세상을 사는 힘을 얻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
    Date2013.06.04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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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자족" To Be Content - 빌립 Phil. 4:10-14

    KCCBR, May 26, 2013 빌립보서 [Philippians] 4:10-14 “자족” [To Be Content] 1.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스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기보다는, 불만족함으로써 발전의 기회를 가지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
    Date2013.05.26 By관리자 Reply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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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성령님을 소개합니다. May I Introduce You the Spirit - 요한복음 John 14:16-17

    KCCBR, May 19, 2013 성령강림주일 Pentecost Sunday 요한복음 [John] 14:16-17 “성령님을 소개합니다” [May I Introduce You the Spirit] 1. 오늘은 2013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성부...
    Date2013.05.20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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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고르반 Corban - 마가 Mark 7:9-12

    KCCBR, May 12, 2013 어머니 주일 Mother's Day “고르반” [Corban] 마가복음 [Mark] 7 : 9 - 12 1. 오늘은 2013년 어머니 주일입니다. 일 년 365일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공경하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Date2013.05.12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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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본 바를 행하라. Do What You Have Seen - 빌립 Phil. 4:8-9

    KCCBR, May 5, 2013 어린이 주일 Children's Sunday “본 바를 행하라” [Do What You Have Seen] 빌립보서 [Philippians] 4:8-9 1. 오늘은 2013년도 어린이 주일입니다. 가정에도 어린이들이 있고, 교회에도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 중에는 영적으로...
    Date2013.05.05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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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하나님의 평강 The Peace of God - 빌립보서 Phil. 4:4-7

    KCCBR, April 28, 2013 “하나님의 평강” [The Peace of God] 빌립보서 [Philippians] 4:4-7 1.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삶에는 그 만큼의 무게가 있습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삶도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많은 중압감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너무...
    Date2013.04.28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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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나의 기쁨과 면류관 My Joy and Crown - 빌립보서 Phil. 4:1-3

    KCCBR April 21, 2013 “나의 기쁨과 면류관” [My Joy and Crown] 빌립보서 [Philippians] 4:1-3 1.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고역인 분도 있겠죠. 의무인 분도 있겠죠. 습관인 분도 있겠죠. 설렘인 분도 있겠죠. 기쁨인 분도 있겠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한 ...
    Date2013.04.21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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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십자가의 원수들 The Enemies of the Cross - 빌립보서 Phil. 4:17-21

    KCCBR April 14, 2013 “십자가의 원수들” [The Enemies of the Cross] 빌립보서 [Philippians] 3:17-21 1.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한 선교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준비된 강사들의 말씀과 선교 현장의 생생한 이야...
    Date2013.04.15 By관리자 Reply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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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 빌립보서 Phil. 3:13-16

    KCCBR April 7, 2013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빌립보서 [Philippians] 3:13-16 1.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목적이나 꿈이 없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제가 처음에 릭 워랜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Purpose Driven Life)라는 책의 제목을...
    Date2013.04.07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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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기쁜 소식 The Good News -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3-4

    March 31, 2013 KCCBR 부활절 Easter Service “기쁜 소식” [The Good News]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3-4 1. 워털루 전쟁은 1815년 6월 18일에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프랑스 군대는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독...
    Date2013.03.31 By관리자 Reply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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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자비롭고 신실하신 대제사장 A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 히브리서 Hebrews 2:14-18

    KCCBR, March 24, 2013 “자비롭고 신실하신 대제사장” "A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히브리서 Hebrews 2:14-18 1.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겸손하신 왕으로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을 맞는 많은 사람...
    Date2013.03.25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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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하나님의 일 vs. 사람의 일 - The Things of God VS. The Things of Men [마태 Matt. 16:21-23]

    KCCBR, March 17, 2013 마태복음 Matthew 16:21-23 “하나님의 일 vs. 사람의 일” "The Things of God vs. the things of Men" 1. 참된 믿음과 종교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참된 믿음은 그 중심축이 하나님께 가 있습니다. 종교는 그 중심축이 인간에게 있습니...
    Date2013.03.18 By관리자 Reply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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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사랑이 이긴다. Love Wins - 고전 1 Cor. 13:1-3

    KCCBR, March 10, 2013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3:1-3 “사랑이 이긴다” "Love Wins" 1. 한 사람의 자연인이 어떻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을 구원 간증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다 ...
    Date2013.03.11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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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누가 내 이웃인가? Who Is My Neighbor? - 눅 Luke 10:25-37

    KCCBR, March 3, 2013 누가복음 Luke 10:25-37 “누가 내 이웃인가?” "Who Is My Neighbor?" 1.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은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곧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와 동일하게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Date2013.03.05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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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가장 큰 계명 The Greatest Commandment 마태 Matthew 22:34-40

    KCCBR, February 24, 2013 마태복음 Matthew 22:34-40 “가장 큰 계명” "The Greatest Commandment" 1. 성경은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주셨...
    Date2013.02.25 By관리자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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