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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21)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엘리 제사장의 시대에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임하셔서 말씀하여 주시는 내용에 대하여 공부하려고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세 번이나 받고도,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그에게로 간다. 이제 네 번째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서야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알려 준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답한다. 우리도 말씀을 대하기 전에 사무엘과 같은 태도를 갖자. 그리고 순종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자.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무엇이 희귀하여 무엇이 흔히 보이지 않았었는가 (1/참조, 삿 21:25)?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답)        (1) 여호와의 말씀
        (2) 이상
(해설) 사무엘은 이제 “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랐다. 아이라고 했으므로 아마 약 10세 전후가 되었을 것이다. 젖 뗄 무렵인 세 살 정도에 부모를 떨어져서 벌써 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란 것이다. 비록 엘리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온갖 못된 짓만을 일삼는 상황 가운데에서 사무엘은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후세를 키우시는 일이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였을 때, 그분은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오직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 남기셨다. 우리는 그저 한 세대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잘 보기 힘들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신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의 일생을 쓰시지만, 오직 그 사람만을 쓰시는 것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서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를 보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모세의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하나님이시고, 엘리의 하나님이 또한 사무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이지만,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후세들을 잘 기르는 것이다.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기르는데는 실패하였지만, 사무엘은 정확하게 길렀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사무엘이 엘리의 수하에서 자랐다는 것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하여 사무엘상 저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말씀 (히, “따바르”)이 희귀하고 이상 (히, “존”)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은 영어로 vision이라고 번역된다. 말씀이 희귀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았을까? 사무엘 시대는 사사 시대와 그대로 연결된다. 비록 엘리 제사장이 그이 역할을 어느 정도 하였다 할지라도, 사사 시대의 영적인 상황과 엘리 시대의 영적인 상황은 별로 다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사사기를 공부한 것을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사사시대는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싫어하던 시대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모두 다 스스로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였고, 하나님의 보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였다. 말씀은 듣는 것이고, 이상은 보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능을 감각이라고 하고, 우리에게는 오감이 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맛보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감각 중에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하여서 듣는 것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엘리는 늙고, 사무엘은 아직 어린 그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은 희귀했고, 비전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가 암담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실 것인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며, 하나님의 주시는 이상을 들어야할 책임이 있는가? 바로 엘리 제사장이 아닌가?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자기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하는 제사장들이었다. 이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너무나 멀어져 있었고, 백성들은 어두운 가운데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영적인 상태를 책임지고 있던 엘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였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나도 한 교회의 목회자요, 한 가정의 가장이요,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분명히 보여주시는데, 우리의 귀가 둔하고, 우리의 눈이 어두워져서 못 듣고 못 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경건의 시간과 성경 통독을 통하여 이 한 해 동안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귀한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그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을 때에 사무엘은 어디에 누웠는가 (2-3/참조, 출 27:20-21)?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그 처소에 누었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답)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었더니”
(해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때에 사무엘상 저자는 2절에서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엘리는 너무나 늙었던 것이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에 바쳐졌을 때의 나이가 전승으로는 98세였다고 했기에 지금은 아마 105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의 시각이 매우 흐려져 있을 만도 한 때였던 것이다. 사무엘상 저자는 2절 하반절에서부터 한 새로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웠다. 즉 밤이 깊어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때 여호와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등불이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곱 개의 가지로 이루어진 등불로서 감람유를 사용하여 밤에 여호와의 전을 밝히는 등불이었다. 이 등불은 기름이 다하는 새벽 동이 트면 꺼지게 되었다 (출 27:20-21;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keep the lamps burning]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말은 시간이 새벽이 아닌 한 밤중 정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전인 성막은 크게 지성소와 성소로 이루어져있다. 사무엘이 누웠던 곳이 지성소일까? 아니면 성소일까? 아니면 지성소나 성소가 아닌 그의 숙소일까?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그것도 일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린 사무엘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누웠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성소는 어떠할까? 성소와 지성소는 오직 휘장으로만 나뉘어져 있었고, 성소에 누워 있어도 곧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에 누워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도 불확실하면, 여호와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의 사무엘의 숙소에 사무엘이 누웠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등불이 켜지는 장소가 성소 안이었으며, 엘리는 자기 숙소에 누웠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 아마도 사무엘은 성소에 있는 여호와의 등불 곁에서 간이로 잠을 잔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볼 수 있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분을 너무나 진심으로 섬겼으며,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곳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 가까이에 누워서 잠을 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무엘은 여호와를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일전에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한 성도 가정이 내 친구 목사님 교회로 옮기면서 그 이유를 자기 교회에서 목사님이 예배당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실족하여서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없었고,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목사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여호와의 궤가 있는 하나님의 전 안에서 잤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표현되면 어지간한 오해는 생기지 않은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누구에게로 달려가서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자 그가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가서 누우라”고 하였는가 (4-5)?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답) 엘리
(해설) 사무엘상 저자는 4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라고 하였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흔하지 않았던 현상인가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무엘상 저자는 1절 하반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하지 않았다는 말을 강조하여서 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그 동안도 이미 경험하였겠지만, (물론 모든 성경이 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용의 주도한 저자여서 한 구절도 우리가 그냥 보아 넘길 것이 없다. 그만큼 세심하게 말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사무엘을 부르신 것이다. 아마 이때에 사무엘은 잠을 청하기 위하여 누워 있었고, 완전히 잠에 들었거나, 어느 정도 잠에 들었거나, 아니면 아직 잠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보는 것이 비전이고,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것이 곧 말씀을 듣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하지 않던 시대에 드디어 아이 사무엘에게 여호와께서 집적 현현하신 것이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형체를 갖지 않으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볼 수 있는 형체를 입으시고 나타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분의 의사에 따라서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그분을 보여주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이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여호와께서 직접 현현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가 바로 여호와께서 직접 현현하신 경우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한 번도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체험한 일이 없기에 누군가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기에 잽싸게 엘리에게로 달려간다. 아마 엘리가 사무엘을 부르는 일이 종종 있었을 것이다. 앞을 잘 못 보는 엘리로서는 사무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어린 사무엘은 엘리를 충성스럽게 섬겼을 것이다. 사무엘의 입장에서 볼 때, 엘리는 자기를 불러놓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자고 있거나, 혹은 누워있었다. 그래서 사무엘은 “당신이 나를 불렀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고, 엘리는 자기가 사무엘은 부른 일이 없기에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엘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아마 사무엘이 어떤 소리를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자기의 잠을 깨우지 말고, 또 사무엘도 잠을 설치지 말고, 가서 자라고 말한 것이다.

4. 누가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는데,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달려갔는가 (6)?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답) 여호와
(해설) 그런데 동일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다시 여호와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것을 모르고, 엘리에게로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엘리가 자기를 불렀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달려가지 않고 그에게 그냥 갔다. 그러나 엘리도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사무엘을 돌려보내었다. 이것으로 보건대,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엘리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릴 정도의 거리에 엘리와 사무엘이 서로 누워 있었다면, 사무엘이 무슨 음성을 들었다면 엘리도 분명히 들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타나 말씀하실 때에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것은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많아서 귀가 어두워진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음성을 오직 사무엘에게만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장막 안에서 대화하실 때에 사라는 장막 뒤에서 들었다 (창 18:10). 그러나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빛은 보지 못하였다 (9:7).
        이러한 일이 두 번 일어날 때에도 엘리는 아직 진상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다. 사무엘은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그랬고, 엘리는 영적으로 그리고 육신적으로 둔감하여져서 무엇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5. 이렇게 두 번씩이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으나 그가 그 부름을 엘리의 부름으로 착각한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7)?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답)        (1)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2)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이었기 때문에
(해설) 사무엘상 저자는 7절에서 이렇게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아직 사무엘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부모님과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를 알았지만, 아직 체험으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무엘의 쪽에서 여호와를 체험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히브리어에서 “알다” (야다)라는 단어는 이와 같이 체험적인 앎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여호와를 알지 못한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체험적으로 알면, 여호와를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로 보건대 우리들의 자녀들이 사무엘의 나이정도 자라면,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의 인격으로 만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씀으로 자라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6.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은 이번에도 엘리에게로 달려갔지만, 엘리는 누가 사무엘을 부르신 줄을 깨닫고 무엇이라고 말하여 주었는가 (8-9)?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답)        (1)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2)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고 알려 줌
(해설) 이제 세 번째 동일한 일이 일어났다. 사무엘은 이번에도 미심쩍어 하면서 엘리에게로 “갔다.” 엘리는 신앙의 대 선배로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했다. 엘리는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시고 계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순간에 엘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는 먼저 사무엘에게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지를 자상하게 알려 주었다. 다시 돌아가서 누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누가 부르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하라고 일러주었다.
        엘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가 아닌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전반적인 흐름을 보아서 엘리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담담하게 받아 들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직접 부르시지 않으시고, 사무엘을 부르신 것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분해하거나 원통해할 정도의 힘도 엘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엘리는 늙고 나약하고 지치고 병약하고 힘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기력이 소진한 상태요, 번 아웃된 상태였다.

7. 여호와께서 네 번째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자,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먼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10-11/참조, 요 10:3)?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답)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해설) 이제 네 번째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임하셔서 서서 사무엘을 부르셨다고 좀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다고 되어 있다. 이로써 앞의 세 번에서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들의 간증을 주로 들어보면, 하나님은 다름 아닌 그 부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다. 한 사람은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구체적인 인격체로 드러난다. 그래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그렇게 유명해 진 것이다:

        꽃
                                                김춘수 (金春洙)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952년 현대 문학)

하나님은 우리 하나, 하나를 이름을 불러서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의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3)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매일 매일, 매순간, 매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그 이름으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실 때, 나는 참으로 구원을 받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무엘의 태도를 보자.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알려준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답하였다. 히브리어로 말하자면 “띠베르, 키 쇼메아 아브데카”라고 한 것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띠베르), 자기는 그분의 종이기에 들을 것이다(쇼메아)라고 분명히 자기의 태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태도를 사무엘의 태도와 동일하게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나, 성경을 통독할 때나, 성경 공부를 임할 때나, 설교 말씀을 들을 때나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런 태도와 “어디 설교 잘 하나 보자, 들을 만 하면 듣고, 듣지 못할 만 하면 안 듣겠다”는 태도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사무엘이 여호와께로부터 들은 말씀은 너무나도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였다. 그 대상은 바로 다름이 아닌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 관한 것이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1). 엘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엘리의 가정에게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은 이스라엘 중에 행하시는 일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도 먼저 하나님께서 청각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행한 일을 듣는 모두가 다 너무나 놀라서 두 귀가 울리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무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면 그 충격에 의해서 귀가 멍하여지고, 더 나아가 울리게 (tingle) 되는 것이다. 평소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면, 언젠가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듣게 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아니 불도저로도 못 막을 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엘리에게 이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실 그 일은 사무엘상 2:27-36절까지에 타나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전한 내용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감하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그대로 다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8.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에 대하여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엘리의 집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맹세하셨는가 (13-14)?
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답)        (1)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2)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해설) 여호와께서는 엘리 제사장의 죄악을 “그의 아는 죄악”이라고 표현하셨다. 엘리는 나이가 많아 늙어서 모든 감각이 둔하여졌다고 변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점에 있어서 분명히 하셨다. “엘리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엘리가 금하지 않은 것은 엘리의 아는 죄악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과 예물을 짓밟고, 백성을 우롱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음행을 하였다. 엘리는 그러한 자기 아들들의 태도에 대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삼상 2:23-25)라고 반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의 태도가 하나님께 전혀 흡족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엘리에 대하여 평가하시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삼상 2:29)고 하셨다. 엘리의 죄악은 무엇인가?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고,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금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그의 아는 죄악이다.
        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즉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제물을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은 회개의 표현인데 그러면 회개하지 못하는 죄라도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말씀은 엘리 제사장이나 그의 아들들이 이미 회개할 수도 없을 정도의 영적인 상태에 달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엘리에 대한 심판을 엘리가 아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느냐 하면, 구원하실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하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반대로 구원하지 않으실 사람들은 어떻게 하시냐 하면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시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돌이키지도 못하게 하시고, 마음으로 믿지도 못하게 하셔서 예수님을 전하여도 그분을 개인적인 구주와 주님으로 모셔들이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전도하라고 하였으니 전할 뿐이요, 누가 믿을 지 믿지 않을 지 잘 모르니 전하는 것이요, 익은 고구마는 주께 돌아오고, 아직 익지 않은 고구마는 그의 때에 돌아올 것이요, 또 영원히 익지 않을 고구마도 있는 것이다.

9.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15-17)?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7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답)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해설) 사무엘은 그러한 말씀을 듣고, 그러한 이상을 보고 난 후에 잠이 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누워만 있었을까? 아마 깊은 잠을 잤다고 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서 하나님이 전의 문을 열었다. 즉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의 문을 여는 일을 포함한 하나님의 전의 일을 하였던 것이다. 사무엘은 그러나 자기가 들은 말씀, 자기가 본 이상 (즉, 비전)을 엘리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엘리는 사무엘을 불렀다. 이 말씀에 근거하면,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서 알기는 알았지만, 그분이 사무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에 관한 일을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에 기인한다. 하나님은 엘리에 관한 일을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고, 어린 사무엘의 입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엘리로 하여금 듣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엘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엘리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그리하여 사무엘은 하나님이 말씀을 전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10.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엘리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18)?
18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답)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해설) 이미 엘리는 거의 숙명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11.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어떻게 하셨으며, 온 이스라엘이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19-20)?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답)        (1) 사무엘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심
        (2)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음
(해설) 한 사람을 세우는 데 있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공신력이 있게 하심으로써 세우는 것이다.

12.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자, 사무엘의 말이 어떻게 되었는가 (21-1:1)?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답)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해설) 이제 명실상부 어린 사무엘이 이스라엘에 선지자로서 드러나는 시기가 된 것이다.

13.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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