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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삼상 2:27-36)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저지른 죄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로챔으로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다. 둘째는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의 두 아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엘리를 포함한 그의 집안과 그 후손에게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엘리에게 그 내용을 전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의 가정이 입었던 은혜와 특권, 그의 가정이 저지른 죄들, 그에 따른 심판, 하나님이 새로이 새우실 제사장, 그리고 엘리의 후손은 그 새로운 제사장에게 은혜를 구걸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가 아니면 멸시하는가?

1.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일렀는가 (27/참조, 고전 10:11; 잠 13:24)?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답)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해설) 늙은 엘리 제사장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그를 오늘날 이렇게 비참한 상태로 몰고 갔는가? 오늘 우리는 이것에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하자. 왜냐하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11)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공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질 사람이 있겠는가?
        (1) “참, 고소하다. 참, 잘 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 가운데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아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사람의 산의 돌, 다른 사람의 산에서 나는 평범한 돌로도 나의 산에서 나는 옥돌을 가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자성어. 즉, 다른 사람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나의 행동과 인격을 바로 잡는데 사용할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임)으로 삼아야 한다.
        (2) “야, 나라면 저렇게 안될텐데.”: 즉, 자기는 잘났다는 것이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옳기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단한 자신감, 즉 무식하게 교만한 태도인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옳은가? 나도 동일한 죄인이지만,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와 자매의 약함과 악함을 보면, 지적하여 공격하는 것을 능사로 삼지 말고, 눈물로 감싸안고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일이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심판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면, 입 다물고, 그저 하나님의 두려우신 심판을 바라볼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 제사장의 당한 일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 내 가족과 내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엘리와 그의 아들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로 하자.
        엘리의 아들들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즉 예배를 능욕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충실하게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고, 중간에 가로채고 착복했다. 하나님께 충실하게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몫을 주시는데,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아니하였다. 자기들이 받을 것을 다 받고, 어느 예배자에게든 가서 그들이 먹으려고 솥에 삶는 것을 세 살 갈고리 (즉, 三指創)를 가지고 와서, 찔러서 걸리는 대로 뺏어 먹었다. 또 심지어 하나님께 먼저 기름을 태워 드려야 하는 규정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구워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하여 생고기를 먼저 뺏어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을 사무엘상 저자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을 오늘날로 적용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영광과 예물과 예배를 예배 인도자가 가로채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는 일이 아닌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할 자리에 피조물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되어서 자기 자신이 마치 하나님인양 하나님의 것으로 영광과 예배를 받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볼 때, 이런 죄들이 단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그들이 지은 죄는 회막문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함으로 간음의 죄를 지은 것이다. 백성들에게 성결한 삶의 본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의 제사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회막문의 여인들을 범한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질서는 있을지언정, 계급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고, 대장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복종한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왕명을 거역하여 새로운 명령을 내리는 것이 바로 반역이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명한 것이 바로 고려의 왕의 명령에 대한 거역이었고, 그것이 바로 반역이었으며, 그것이 성공하여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씨 조선은 늘 반역으로 이루어진 정부라는 불명예가 따라 다니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받은 환경은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당연히 이성계의 역성혁명도 가능한 한 최대한 미화되어 가르쳐졌던 것이다. 각설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과 뜻이고, 그에 순종하는 삶이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을 때에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고 말한 바울의 본을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의 죄에 대한 엘리의 태도는 너무나도 미온적인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안타까웠지만, 그 아들들을 엄하게 다스리지 못하는 중대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자녀들을 훈련하고 심판하고 징벌하면서 채찍으로 그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훈련과 심판과 징벌과 채찍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라는 정도의 말로써 어떻게 악행을 하는 자녀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자식을 매로 다스려서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지 않으면, 그 자식의 인생이 망치고, 나의 삶도 망치고, 나의 가정도 망치고, 타인의 삶도 망치고, 사회도 망치고, 하나님도 욕을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마땅히 자식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저 자식에게 좋은 것 더 주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기죽이지 않고, 오냐, 오냐 기르면 그 자식이 잘 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잠언에 나오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3:24),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찌니라” (19:18)“아이의 마음에는 미려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22:15)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23:13),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히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29:17)는 말씀들을 기억해야 한다. 한결같이 자식을 물리적으로 징계하는 것을 포함하여, 근실히 징계해야 자식도 진정한 사랑이고, 그 자식도 잘되고, 그 자식에게 소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를 기른 수산나 웨슬리 여사는 열 여섯인가 하는 자녀들을 모두다 훌륭하게 기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교육 방법은 아이들이 서, 너 살이 되어 자기 고집을 세울 때, 즉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매로 다스려서 그들의 기를 꺾어 놓음으로써 그들을 순종하는 자녀들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현대 교육법은 기를 살리는 교육인 것을 보면 얼마나 성경적 교육이 보수적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엘리의 가정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이 바로 자녀 교육에 관한 부분이 아닌가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그래서 한 명의 하나님의 사람, 즉, 선지자를 선택하셔서 엘리에게 보내신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사람들에게 전하신다. 지금은 성경이 완성되었고, 자유 세계에 사는 누구나 성경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에는 훨씬 더 선지자들을 통하여 시시때때로 말씀하여 주셨던 것이다. 기드온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듯이 (삿 13:6), 엘리 가정을 심판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신 것이다. 이 무명의 선지자는 요나와 같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임을 맡았다. 심판의 메시지는 회개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회복의 메시지를 일반적으로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레미야처럼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인기가 없는 일이다. 오히려 시대에 영합하여 청중이 듣기를 원하는 그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이 선지자는 그 시대 그 나라 최고의 지도자였던 엘리에게 담대하게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이 무명의 선지자는 어느 날 엘리에게 찾아와서 “여호와의 말씀에”라고 말을 시작한다. 즉 히브리어로 “네움 예흐와”로 시작되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 선지자는 레위 지파와 아론 자손의 하나님 앞에 받은 특권과 은혜를 먼저 상기시킨다. 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구원의 역사는 어린 모세의 강물에서의 구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모세가 곧 레위에 속한 사람이요, 그의 형 아론이 곧 레위 지파 중에서 제사장의 성직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 떨기나무에 임하신 하나님을 뵘으로 민족구원의 소명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도권을 가진 선택이었고, 사랑이었다. 이같이 성경은 항상 하나님의 주도권으로부터 모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2.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며 아론의 자손이 받은 은혜와 직분을 상기시키며, 그에 따른 특권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28)?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답)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해설) 이제 하나님은 더 명확하게 아론 자손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직분과 특권에 대하여 거론하신다.
        (1) 은혜: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으로 삼아” (I chose your father out of all the tribes of Israel to be my priest,): 엘리의 조사에게 주셨던 첫 번째 특권과 은혜는 그의 가문인 아론 족속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제사장을 삼으신 것이다. 즉 아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론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그의 모든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형인 아론을 택하셔서 그와 그의 아들들이 영원토록 제사장이 되게 하셨던 것이다. 출애굽기 28:1을 보자: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여.” 모세의 지파인 모든 레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모세의 형인 아론의 가문만이 제사장이 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제사장 가문이 해야 할 일과 그 일에 따른 특권을 다시 요약 반복하여 설명하여 준다. 물론 엘리 제사장이 이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에게 확실하게 그의 받은 은혜와 직분과 특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2) 직분: “내 단에 올라” (to go up to my altar,):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막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았다. 심지어 이 일은 레위인들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제단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을 맡기셨다. 여호와의 단에 오르는 것이 곧 제사장의 직분이다. 예물을 가지고, 백성의 죄를 가지고, 여호와의 제단에 오르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찌라 내가 그 회막과 그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여호와니라” (출 29:42-46). 아론 자손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단에 올라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행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만나시며,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며, 이스라엘은 거룩하여지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사장의 직분은 참으로 놀라운 직분이요, 커다란 영광이요, 특권인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두렵고 떨리는 직분인 것을 또한 알아야 한다. 그것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엘리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불을 들여서 여호와의 제단에서 나오는 불로 인하여 죽은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레 10:1-2).
        (3) 직분: “분향하며” (to burn incense,): 분향 (burning incense)은 분향단에서 향을 드리는 것이다. 분향단은 성막의 성소 안에 지성소의 증거궤 맞은 편에 놓여 있었다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Put the altar in front of the curtain that is before the ark of the Testimony] (출 30:6). 아론 자손 제사장들은 아침, 저녁으로 분향단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살라야 한다. 이것은 대대로 끊이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이다. 분향단은 오직 분향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분향에 쓰이는 향은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에 유향을 섞되 작기 동일한 중수대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출 30:34-35)한 것이다. 이 향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과 동일한 향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으며, 만드는 자는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4) 직분: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and to wear an ephod in my presence.): 에봇은 제사장들만이 입는 거룩한 옷을 말한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찌며 그들이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출 28:2-5). 그러므로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옷의 대표격이 되는 옷이다. 제사장은 이 옷을 입음으로서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지금도 일부 교단에서는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나 공적인 의식을 집행할 때는 성의 즉 가운을 입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침례교파는 그러한 가운을 입지 않는다.
        (5) 특권: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게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I also gave your father’s house all the offerings made with fire by the Israelites.): 정확하게 말하면 번제는 모두 다 태워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므로 번제를 통하여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예배자가 받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참으로 온전히 드리는 제사인 것이다. 그러나 번제를 제외한 제사는 일부는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는 예배자가 먹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 하나님께 태워 드리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께 들거나 흔들어 드린 후 제사장에게 주는 몫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사장이 먹는 응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은 피와 기름이다. 피는 번제단 주위에 온전히 뿌리고, 기름은 번제단 위에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피를 쏟는 것은 곧 생명을 쏟는 것이므로 이미 이로써 생명을 드린 것이다. 또한 기름은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것이다. 출애굽기 29:26-28에 나오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취임식에서 사용된 수양도 역시 가슴과 넓적다리를 그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던 것이다. “너는 위임식 수양의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는 너의 분깃이니라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의 위임식 수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 (출 29:26-28). 우리가 지난 주에 공부한 대로 레위기 7장에 정확하게 화목제에서 하나님께만 드리는 부분과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시는 것과 예배자가 다시 받는 것으로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는 것이 제사장의 가장 큰 특권인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기업이 되는 토지를 받아서 농사도 짓고, 짐승도 기르는 일을 통하여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기업이 없는 대신에 말씀과 제사로 열심히 백성들을 섬기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자기들의 응식으로 삼아서 먹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인 것이다.
        이러니 오늘날에도 그 원칙이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이다. 목회자들은 일반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면서 본을 보인다. 성도들은 직업을 갖고, 목회자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산다. 이제 성도들이 헌금을 낼 때,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내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의 일부를 다시 목회자에게 주신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거나,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둘 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다. 성경의 원칙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또한 마땅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다시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주는 사례금을 받아서 사는 것이 풍족하지도 않지만, 또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수입을 받는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서 엘리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시는 것이다.

3. 여호와께서는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에 대하여 어떠한 두 가지 잘못을 행했다고 말씀하셨는가 (29)?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답)        (1)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2)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곳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해설) 첫째로 지적하신 죄는 “너희”즉 복수로서 엘리와 그 두 아들들의 죄를 지적하신 것이다. 그들이 한 것은 여호와의 처소 즉 성막에서 그분이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명하신 그 모든 제물과 예물을 짓밟은 것이다. 여기서 “밟으며”라고 된 단어의 원어는 “토브아무”, 즉 “너희가 차 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어적인 의미를 살리면
        Why do you kick at my sacrifice, and at my offering
        which I commanded (in my) habitation;
이 된다. 하나님의 처소라는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성막을 하나님은 그렇게 여기신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 같이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심으로 성막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물과 예물 즉, 희생 제물 (sacrifice)과 예물 (offering)을 명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들이 그것들을 찼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어 NIV에서는 “모욕하다,” 혹은 “경멸하다”라는 의미의 “scorn”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참으로 부족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발로 찬다는 표현이 훨씬 더 생생하고 그림으로 보는 듯하게 표현하여 주는 그림 언어이기 때문이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는 표현을 “행위를 보고 사람의 됨됨이를 안다”라고 번역하면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문장은 이인칭 단수로 되어 있어서 엘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는 왜 너의 아들들을 나보다 더 소중히 여겼느냐”는 말씀이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발로 차 버림으로써, 여호와를 경멸한 엘리는 이제 자기의 아들들을 여호와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중하게 여겼다는 단어는 “바트카베드”라는 단어로 어근은 “카바드”로 그 원래의 의미가 “무겁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 명사형으로 되어서 “영광”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즉 엘리는 여호와와 자기의 아들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볍게 재어서 발로 차서 내 버리고, 자기 아들들은 무겁게 여겨서 소중하게 여겼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그러나 우리를 돌이켜 볼 때,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들을 여호와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내가 있어야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면 하나님이 계셔야 내가 있는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데, 내 자녀가 불치의 병이나, 극악한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된 상황에서 그래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 귀여운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엘리가 그의 아들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 증거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우리가 약자의 것도 부자의 것도 남의 것이라고는 절대로 강탈하거나 훔쳐먹거나 사기를 쳐서 먹어서는 안되지만, 더욱이 하나님의 것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서 먹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기름도 태우기 전에, 즉 고기를 각을 떠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이전에 자기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강탈하여서 자기들의 배를 채운 것이다. “나는 여호와라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2:8)고 하신 여호와는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갈 영광과 예배를 가로채어 먹고 하나님을 경멸한 것을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것을 백성들로부터 강탈하여서 자기들 스스로 살찌게 하였다. 하나님은 피와 기름에 관심이 많으시다. 피와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자기들이 강탈해 먹고 스스로 살찌게 하였다. 사람이 살이 찌면 근육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피하 지방이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기름기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름기를 섭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기가 쉽사리 지방질로 바뀌어서 피하에 저장되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이 당신에게 돌아올 제물과 예물을 놓고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게 따지고 들어가시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로 하나님의 자존심이 상하신 그러한 사안인 것이다.

4.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고 하셨으나, 이제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그분은 누구를 존중히 여기고, 누구를 경멸히 여기실 것이라고 하셨는가 (30/참조, 민 25:11-13)?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답)        (1)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2)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해설) 민수기 25장은 발람의 계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야의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두령들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메어 달라고 명하신다. 이 와중에 시므온의 한 족장인 시므리가 미디안 두령 수르의 딸 고스비를 데리고 회중 가운데로 데리고 들어와 자기의 장막에서 행음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남자를 따라가 그의 막에 들어가서 그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인다. 그러자 염병이 이스라엘에게서 그쳤는데, 이미 그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4,000명이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셨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 25:11-13). 이렇게 하나님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의 가문에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주신 것이다.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하에서 영원할까? 이것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하나님께서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영히 행하리라”고 하신 것을 번복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의 가정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영원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조건적인 약속이 아니라 조건이 있는 언약인 것이다. “결단코 무조건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Be it far from me!, 즉 텍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면 내세우신 언약은 무엇인가?
        For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and (those) who despise me
                shall be despicable.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므카브다이”로서 “나를 무겁게 여기는 자” 즉 “여호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자,”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무겁게 여기신다 (아카베드).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무겁게 여기신다. 즉,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소중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은 존중히 여기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은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honor하는 사람을 하나님도 역시 honor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반대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를 멸시하는 자”는 “뽀자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가볍게 여김을 받는다고 하였다 (“예칼루”).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이 가볍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단지 하나님을 대할 때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대할 때난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자연을 대할 때, 식물을 대할 때, 동물이나 가축이나 애완동물을 대할 때, 어린아이를 대할 때, 어른들을 대할 때, 친구들을 대할 때, 이웃을 대하 때, 언제나 동일한 원칙인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한다. 내가 상대방을 멸시하면 상대방도 나를 멸시한다.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바로 예절이라고 하고, 매너라고 하고, 에티켓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황금률은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이 황금률이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에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5. 하나님을 멸시하는 엘리의 집안에 첫 번째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인가 (31)?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답)         (1st)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해설) 이제 하나님은 엘리의 집안이 당할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먼저 그분은 엘리의 집안의 팔을 끊어 놓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팔이란 한 사람의 능력이나 힘을 말한다. 엘리의 집안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것이다. 우선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임한다고 하셨다. 엘리 그 자신이 노인인데, 그의 가문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두다 어려서 죽는다는 말씀이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다. 참고로 레위인이나 제사장이나 25세에 직분에 나아가서 50이 되면 은퇴하게 되어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엘리는 이러한 심판을 받을 때가 그의 나이 98세였다고 한다. 나이가 먹어서 인생이 영화로워야 하는데, 엘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6. 하나님을 멸시하는 엘리의 집안에 두 번째와 세 번째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인가 (32)?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네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답)         (2nd)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네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며”
        (3rd)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해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복을 받는 동안에 엘리의 가문은 환난을 만날 것이 또한 심판이다. 노인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 다시 나온다.

7. 하나님을 멸시하는 엘리의 집안에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인가 (33)?
33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내 집에서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답)        (4th)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5th) “네 집에서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 죽으리라”
(해설) 엘리의 집안이 모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엘리의 손자가 살아 남는다. 그의 이름이 이가봇인데, 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자세히 공부한다.

8. 하나님께서는 엘리에게 어떠한 일이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에 대한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34/참조, 삼상 4:11)?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답)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을 것”
(해설)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 나가서 동시에 죽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자세히 공부한다.

9.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또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35/참조, 왕상 2:35; 롬 12:1-2)?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답)        (1)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2)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3) “그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해설) 이제 하나님은 엘리의 집안이 아닌 다른 사람을 충실한 제사장으로 세우신다고 말씀하신다. 학자들은 이 충실한 제사장이 곧 제사장 사독이라고 해석한다 (왕상 2:35; 4:2). 즉 아론의 계열이 아닌 사독의 계열이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충실한 (faithful, 네이만) 제사장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he shall do all that is in my heart and in my soul).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충실하다고 할 때, 그것은 그를 세운 사람의 뜻에 맞게 움직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서 판가름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지 돌이켜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로마서 12:1-2).
        하나님은 그 충실한 제사장의 집을 세우고,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정치의 책무를 맡은 솔로몬 왕과 함께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 앞에서 영구히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공부하기로 한다.

10. 하나님은 엘리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해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일으키신 그 충실한 제사장에게 와서 엎드려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셨는가 (36/참조, 삼상 22:18-19; 왕상 2:26-27)?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답)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해설) 사독의 계열이 제사장을 맡았을 때, 아론의 계열인 아비아달이 살아 남게 될 것에 대한 예고의 말씀이다. 사독의 계열의 도움에 의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다 (왕상 2:26-27). 백성들의 고기를 빼앗아 먹던 제사장 가문이 이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간 제사장의 가문에 가서 떡 한 조각을 위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구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11.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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