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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삼상 2:1-11)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바친 한나는 기쁨에 가득 찬 기도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한나는 자기를 고통의 순간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이 어떠하신 분이신 지를 자기의 언어로 표현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고 있는가? 한나의 감사 찬양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라고 하였는데, 그녀는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노래하는가 (1/참고, 시 1:1-6)?
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답)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해설) 어느 나라 문학에서나 비슷하겠지만, 히브리 문학에서도 글은 산문과 시로 나누어진다. 히브리 문학에서는 많은 언어 유희를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 유희는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 난하에 발음을 기록함으로써 이해를 도울 뿐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하셨을 때, 그는 “네, 살구나무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다. 내가 나의 한 말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자체가 언어 유희이다. “살구나무”라는 히브리 단어와 “지킨다”라는 히브리 단어가 비슷한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산문이나 시에서 가지고 있는 많은 언어 유희는 근본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히브리 시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특징은 평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평행법이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순한 한 가지 단문으로 말하지 않고 꼭 두 가지 이상의 문장을 병렬해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행법은 (1) 비슷한 것을 평행하게 하는 동의 평행법 (2) 반대의 것을 평행하게 하는 반의 평행법 (3) 내용을 나열한 후에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 종합 평행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나의 기도는 시의 형태로 기록된 것이므로 이 시에 나오는 평행법을 보자. 먼저 1절에 나오는 첫 번째 두 문장은 어떠한 평행법으로 되어 있는가?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에서 “내 마음”과 “내 뿔”은 같은 내용을 서로 비슷한 단어들을 이용하여 강조한 것이다. “여호와를 인하여”는 두 문장에서 다 동일하다. “즐거워하며”와 “높아졌으며”도 역시 같은 내용을 서로 비슷한 단어들을 이용하여 강조한 것이다. 이로써 이 두 문장은 서로 비슷한 것을 평행하게 하는 동의 평행법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는 “내 마음”과 “내 뿔”과 함께 “내 입”이 같은 내용을 서로 비슷한 단어들로 강조한 것이며, “즐거워하며”와 “높아졌으며”와 “크게 열렸으니”도 역시 같지만, “원수들을 향하여”는 “여호와를 인하여”와 반대가 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의 세 문장은
        A
        A'
        Anti-A
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네 번째 문장은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다
로서 지금까지 말한 세 문장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를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와 둘째 문장은 동의 평행법, 첫째 둘째와 셋째는 반의 평행법, 첫째 둘째 셋째와 넷째는 종합 평행법을 사용한 것이다. 즉,
        첫째 문장 : A
                      ----> 동의 평행법
        둘째 문장: A'
                                      -----> 반의 평행법
        셋째 문장: Anti-A
                                                   --------> 종합 평행법
        넷째 문장: C (conclusion)
이와 같이 구약성경의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모든 시들은 다 평행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시편 1편을 보자.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세 가지 부정적이면서도 비슷한 내용을 병렬함으로써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이 세 가지 문장은 악한 것에 참여하는 상태가 더 심각한 내용으로 발전한다. 즉,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 처음에는 생각을 좇고, 두 번째는 길에 함께 서고, 마지막에는 자리에 앉는다. 이렇게 1절에서는 내용을 더 심화시키면서 비슷한 문장으로 강조하는 동의 평행법을 사용한 것이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제 2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묘사한다. 복 있는 사람이란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고, 여호와의 길에 서고, 여호와의 자리에 가는 것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지혜를 따르며,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이 그러기 위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여기서도 비슷한 내용을 더 심화시키면서 강조하는 동의 평행법을 사용한 것이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3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 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과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비교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냇물로 인하여 물이 풍부한 곳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림과 같이 복 있는 사람은 그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과실을 맺을 철이 되면 과실을 맺고, 또 사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 마찬가지로 그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여호와의 율법에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복 있는 사람은 적절한 때가 되면 의로운 열매를 맺게 되고, 늘 그의 생각과 표현이 건강하고 푸르다. 그리하여 복 있는 사람은 그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것이다. 이렇게 3절은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그 예 자체는 동의 평행법을 사용하고, 그 예가 자연스럽게 결론을 도출하는 종합 평행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제 시인은 4절에서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비교한 것과 반대로 악인이 어떠한 지를 설명한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뿌리가 없다. 정함이 없다. 열매가 없다. 내용이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날라 다닐 뿐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이 그저 불에 태워질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4절과 5절을 서로 반대가 되는 내용을 병렬하여 강조함으로써 반의 평행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5절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과 죄인은 어떠한 지를 동의 평행법으로 강조한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은 하나님의 불 심판을 이겨낼 수가 없고, 의인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과 의인은 동의어인 것을 알 수 있다. 5절도 역시 동의 평행법을 사용한 것이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제 6절에서는 이 시의 결론을 말하고 있다. 의인 즉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통하여 그분의 생각과 말씀을 따라 살기 때문에 그분이 인정하신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뜻이나 생각이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것에 올 수 없는 것이다. 6절은 대표적으로 반의 평행법이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시의 평행법은 단지 그 평행법을 이루는 한 부분만을 가지고 의미를 파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와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두 문장이 엄밀하게 말해서 두 가지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즉 반대의 것을 말하지만,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은 한 가지인 것이다.
        자, 그러면 한나가 1절에서 기도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녀는 무엇을 기도하였는가?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니”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나는 결혼 생활 20여년이 지나가도 자녀를 얻지 못하여 고통 가운데 살던 여인이다. 더욱이 남편 엘가나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브닌나를 얻어서, 브닌나는 아들들과 딸들을 계속 낳고 있었다. 그 동안 그것을 살펴보면서, 더욱이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도 브닌나로 인하여 격동함을 당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나는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서원기도였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리하여 한나는 사무엘을 얻었고, 한나는 약속대로 사무엘의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그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드리는 것이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녀의 가슴이 터질 것과 같은 가슴 벅찬 기쁨과 감격을 느꼈고, 그 감정을 이 시에서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시의 서론부터 그 기쁨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한나는 자신의 마음에 가득한 즐거움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나, 남편 엘가나나, 제사장 엘리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그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녀가 원하는 기도가 응답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시고, 그녀에게 응답을 주시고, 그녀를 고통의 순간에서 건져내어 주신 여호와를 인하여 그녀의 마음에 즐거움이 가득한 것이다.
        그녀의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다고 했는데, 뿔은 무엇을 상징하는 단어일까? 우리는 주로 뿔이라고 하면, 마귀를 상징하는 그림이나 형상 위에 솟아난 뿔을 생각하기에 부정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성경의 방식과 문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성경의 문화와 방식을 보아야만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뿔은 황소와 같이 힘이 센 동물의 뿔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뿔이란 힘을 상징하는 시적인 용어이다. 즉, 한나가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전에는 전혀 힘이 없었지만, 여호와를 인하여 힘을 갖게 되었다는 고백인 것이다. 힘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하여 찬양하는 것이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 동안 한나는 브닌나가 주는 고통 가운데 살았다. 브닌나뿐만 아니라 한나에게 고통과 좌절을 주고, “너는 안돼”라는 음성을 끝없이 속살거린 존재로 있었을 것이다. “너, 아기 날 수 있어? 난 아기 많이 낳았어. 네가 남편과 잠을 자지만, 그것은 남편의 힘만 뺄 뿐이야. 넌 안돼. 넌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자야. 너는 쓸모가 없어. 그런 너를 남편이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야. 그건 그저 동정일 뿐이야. 남편 엘가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어.” 브닌나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나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었을까?
        그녀의 원수들이 그녀를 격동시킬 때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었다. 그녀는 원수들에게 맞대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호와께 나아가 오래 기도하였다. 맞대응을 하는 데도 에너지와 시간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에도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 그러나 맞대응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 맡기면,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롬 12:19-21)는 말씀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 것이다.
        한나는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이제 응답을 받은 상태에서 그녀의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을 크게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 지를 보라”고 크게 외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한나는 지난 20년 동안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기가 사무엘을 낳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행위 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라는 표현은 1절에서 먼저 나온 세 문장들의 원인을 결론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나 뿔이나 입이 그렇게 즐겁고 기쁘고 강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를 구원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쁨이 있기에 그녀의 마음에 기쁨이 있고, 그녀의 뿔이 높아졌고, 그녀의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나는 절대적으로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린다. 자기의 실력이나 영성을 자랑하는 교만끼가 하나도 없다. 여기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신약적인 영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한나가 처했던 그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서 건져내심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첫 번째 한나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게 베푸신 은혜와 구원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잊지나 않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신 것을 누리지도 못하고, 늘 부족하고 아쉽고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 가운데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고, 그분께 바르게 기도하고, 그분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현재 나의 모습이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복 주신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의 행복의 조건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인하여 우위에 있는 것에만 제한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은 언제는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나된 모습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면, 나의 현재의 모습에 대하여 일단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비전도 있고, 미래도 있고, 소망도 있는 것이다. 현재를 만족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미래가 있는가? 물론 거룩한 불만족이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기의 모습과 현재의 자기의 모습 사이에서 오는 불일치로 인하여 불만족이 있다. 그러나 이 불만족이 우울증과 불신앙과 자기 연민으로 우리를 인도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사탄이 편승하면 우리는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룩한 불만족을 느낄 때, 한나처럼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2. 한나는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무엇도 없다고 노래하는가 (2)?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답) 반석
(해설) 한나는 두 번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왜 다른 인간이 만든 신들과 다른가를 노래하고 있다. 2절은
        A  :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A' :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A'':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음이니이다
에서 보듯이 여호와만이 거룩하시고, 여호와 밖에는 다른 신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모든 인간이 의지해야할 반석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세 구절이 함께 있는 동의 평행법이다. 먼저 한나가 고백하는 내용은 하나님만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내용이다.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인간을 인도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인간적인 것에서 철저하게 멀리 계신 분이시다. 거룩하심은 곧 분리되심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인간과의 절대적인 분리되심에서 드러난다. 한나는 자신이 죄인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하는 것이다.
        한나의 고백은 더 나아가서 그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녀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 당신만을 섬기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
        2절에 나오는 한나의 세 번째 고백은 여호와만이 오직 반석이시라는 것이다. 반석은 구약성경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 반석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진흙은 반대로 모든 약함과 혼란의 상징이다. 하나님이 반석이라는 것은 그 위에 굳건하게 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반석은 강하고, 넓고,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강하시고, 그 품은 넓으시고, 결코 변하시지 않은 분이시다. 세상에는 반석이 많이 있지만, 인간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반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신 다른 반석을 따를 때에는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3. 한나는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그분이 어떻게 하신다고 노래하는가 (3/참조, 잠 24:12)?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답)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해설) 3절에서는 2절에 노래한 것을 받아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오직 한 분이시고, 오직 하나이신 반석이므로 이제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노래한 것이다. 3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첫째 두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지를 노래하며, 뒤에 두 구절은 하나님은 인간들을 어떻게 대하시는 지를 노래한다.
        A  :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A' :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인간은 하나님을 잘 볼 수 없고, 하나님이 음성을 듣기 힘듦으로 교만하고 오만한 말을 하기가 쉽다. 마치 자기 자신이 거룩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며, 자기 자신이 의지할 반석이 되는 것처럼 교만하고 오만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하나님의 우리의 행위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지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나 같이 거룩한 존재가 어디 있느냐고 하며, 내가 곧 표준이라고 하며, 나 밖에 믿을 존재가 따로 또 어디에 있느냐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곧 교만하고 오만한 말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부러 잊고, 이제는 마치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든 전능한 신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제일 좋아하시지만, 교만한 자를 제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목이 뻣뻣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다. 교만한 말을 하고, 오만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나가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이 누구일까? 언뜻 브닌나를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나가 브닌나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을 배웠다는 것이다. 브닌나는 한나를 조직적이고, 고단수적인 방법으로 고통스럽게 하였다. 속을 바작바작 태우고, 계속적으로 약을 올려서, 결국은 참을 수 없이 그 노를 폭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대신에 자신은 엘가나의 사랑을 받을 때마다 아들이나 딸을 난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곧 교만하고 오만한 말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이 어디 브닌나에게만 있는 문제이랴. 우리는 조금만 잘난 구석이 있으면 브닌나처럼 상대를 괴롭히는 데 쾌감을 느껴서 마치 취미생활 하듯이 형제 자매를 놀리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나는 입을 다물라고 하는 것이다. 잠언은 여러 차례 교만과 오만에 대하여 경고한다 (잠 8:13; 16:2). 잠언 기자는 24장에서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한나는 이제 3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가 교만한 말, 오만한 말을 내지 말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B  :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B'  :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하나님이 모두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지식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과 행위의 무게를 달아보신다는 것이다. 심판하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인간끼리는 서로 모를 수도 있다. 속이기도 하고 속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오히려 인간의 모든 문제를 평가하시며, 그에 따라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4. 한나는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어떻게 되었다고 노래하는가 (4)?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답)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해설) 한나는 자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서 자기 자신을 용사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선언한다. 용사의 활이 꺾인다는 것은 용사가 그 의지하던 활이 꺾이므로, 용사 그 자체가 꺾인다는 것이다. 용사가 활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브닌나는 자기가 자녀를 잘 낳는다는 것을 의지하였다. 자기의 다산성을 의지하고 자랑하였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듯 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다산성이 그녀의 활이었다.
        한나는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라고 함으로써 그녀 자신을 넘어진 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20년 가까이를 넘어진 자로 살아왔다. 힘이 없어서 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에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허리를 동일 수 있었다. 그녀는 힘이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님을 알았다. 하나님이 힘을 주실 때에만, 그녀가 설 수 있음을 알았다.
        4절에 나오는 평행법은 어떤 평행법인가?
        A :        용사의                활은                꺾이고
        B :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대표적인 반의 평행법이다. “용사”와 “넘어진 자”가 “활이 꺾인” 것과 “힘으로 띠를 띤” 것이 반대의 의미로서 대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강함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넘어진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힘으로 띠를 띠게 됨을 알아야 한다.

5. 한나는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어떻게 되었다고 노래하는가 (5)?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답)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해설) 한나는 계속하여서 반의 평행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대조하여 노래한다:
        A              :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Anti-A         :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B         :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Anti-B        :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먼저 한나는 풍족하고 힘이 많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에 결국은 품을 팔아서 양식을 구할 수 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먹을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주리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때, 다시는 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체험에 철저하게 의지한 고백이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여자인 그녀가 일곱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녀가 현재 받은 아들은 사무엘 하나이지만, 그녀가 “일곱”이라고 노래한 것은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 것이 그녀에게 완벽하고 철저한 것이라는 고백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던 자는 비록 자녀를 많이 두었지만 쇠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녀의 체험에서 나온 이러한 고백은 참으로 힘이 있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6. 한나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어떻게 하기도 하시며, 또 어떻게 하기도 하신다고 노래하는가 (6)?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답)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해설) 이제 한나의 기도는 더 승화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한나는 동의 평행법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A :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A':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시라는 것이다. 자기가 자녀가 없이 고통 가운데 살았을 때, 그녀의 고통은 곧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으며, 음부에 내려가는 고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를 때,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서 올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있는 인간이 만든 종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을 구분하는 것도 있다. 선한 신은 선한 일만을 하고, 악한 신은 악한 일만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이나 존재를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7. 한나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또 어떻게 하기도 하시며, 또 어떻게 하기도 하신다고 노래하는가 (7)?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답)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해설) 이어서 한나는 7절에서도 역시 동의 평행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시며, 주관자이심을 선언한다.
        A :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A':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과 부함이, 낮음과 높음이 다 여호와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할 이유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의 나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마음 속에 거룩한 불만족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이다.

8. 한나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면서 무엇이 여호와의 것이며, 여호와께서 세계를 어디에 세우셨다고 노래하는가 (8)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답)   (1) 땅의 기둥들
        (2) 여호와께서 세계를 땅의 기둥들 위에 세우셨도다
(해설) 8절은 앞에 두 구절에서 동의 평행법으로 하나님이 인간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 지를 선언한다.
        A :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A':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도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 지를 한나는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녀의 체험은 그녀의 체험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제 가난한 자를 진흙 구덩이에서 일으키시며, 빈곤하고 핍절한 자를 거름덩이에서 드사 귀족들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나는 6절에서 시작하여 7절과 8절의 상반절까지 노래한 것을 8절의 하반절에서 종합적으로 선언한다.
        C :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로다
        C':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한나는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그분이, 개인의 삶도 그렇게 주관하신다는 것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자기 내면과 삶에서 일어난 일을 통하여 온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땅의 기둥들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적인 표현이므로 과학적 표현이 되지 못한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만일 그것을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하지 말고, 아침마다 지구가 또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9. 한나는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어떠하다고 노래하는가 (9/참조, 단 4:29-33)?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답)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해설) 이제 9절에서는 온 세상을 그 기둥들 위에 세우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끄시는 지를 반의 평행법과 종합 평행법으로 노래한다.
        A :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Anti-A:                악인으로                흑암 중에 잠잠케 하시리니
        C :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온 세상을 지키시는 그 하나님이 하나님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발도 지키셔서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그를 상치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시편의 시인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 악인은 흑암 가운데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그들의 입을 막으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느 인간이라도 힘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교만하여서 자기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통하여 그가 꾼 꿈을 해석 받음으로 그의 교만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경고를 받은 지 일 연도 채 못되어서 그는 자기 궁전 위에서 바벨론 시의 영화를 바라보고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도저히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말이 그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시어서 그로 하여금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 같았다 (단 4:29-33). 이와 같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의 이루어 놓은 일을 통하여 교만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목사님 오늘 참 핸섬하시네요”라고 하고, 그 이후로 네 사람이 더 같은 말로 혹은 비슷한말로 덕담을 했다고 하자. 이제 여섯 번째 사람을 만나면, 나는 당연히 그 사람에게서도 동일한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고, 만일 그가 아무런 말도 안하면, “어. 이 사람은 아마도 눈이 삐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만큼 우리 인간은 교만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참으로 성숙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서로 짝을 지어서 큰 소리로 삿대질을 하면서 “당신 교만해”라고 말해 보자. 그래서 “내가 뭐가 교만해. 난 겸손한 사람이야!”라고 하면, 그는 참으로 교만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 난 교만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겸손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 상대방에서 멋진 목소리로 “당신은 참으로 겸손한 분이십니다”라고 해보자. 그때 반응이 “예, 저는 웡캉 겸손한 사람입니다. 저는 겸손 그 자체입니다. 저에게서 겸손을 빼면 저는 시체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로 교만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아닙니다. 저야말로 겉으로는 혹 겸손해 보일지 몰라도 정말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저 스스로 생각할 때, 내가 겸손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도 있으니 저야말로 교만 덩어리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겸손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만큼 우리는 교만과 겸손 사이에서 늘 왕복하며 고민하며 사는 것이다.

10. 한나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누구에게 힘을 주시며, 누구의 뿔을 높이실 것이라고 노래하는가 (10/참조, 행 12:20-23)?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답)   (1)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2)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해설) 이제 10절은 한나의 기도의 마지막이요 절정이다. 먼저 한나는 동의 평행법으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의 운명을 노래한다.
        A :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요
        A':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1세는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죽임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의지하고 교만한 삶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다. 마침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그의 연설을 들을 때였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그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기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라고 하였다. 아그립바는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광을 가로채었다. 그래서 그는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였다. 곧 주의 사자가 그를 치고, 그는 충이 먹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게 되었다 (행 12:20-23). 이와 같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요,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는 것이다.
        한나의 시의 마지막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에 대한 노래로서 끝을 맺는다. 자기 개인의 체험에서 하나님에 대한 묵상으로, 자기 개인의 체험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 개인의 체험에서 이제는 미래의 어느 날에 오실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의 승리에 대하여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A  :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A' :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A'':                         자기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먼저 하나님은 땅끝까지 악한 자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브닌나를 심판하신 것을 체험한 한나의 시적인 상상력은 땅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또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에게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선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분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분, 즉 왕에게 힘과 권세를 더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로써 한나의 시는 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뿔을 높이시는 분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노래함으로써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더욱이 10절 말씀이 미래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이 시가 궁극적으로 예언적이고, 메시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엘가나와 한나의 첫 아들인 사무엘은 어디에서 누구를 섬겼는가 (11/참조, 창 22:7-8)?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답)   (1) 제사장 엘리 앞에서
        (2) 여호와를 섬기니라
(해설) 이제 한나로부터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엘가나는 라마다임소빔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아기에 불과한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하였다. 한나가 철저하게 사무엘을 교육하지 않았다면, 사무엘은 어머니의 사랑과 가정의 따스함의 부족의 결과로 바른 선지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의 교육은 사무엘에게 최소한이지만 충분하였고, 그리하여 사무엘은 이제 엘리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얼마나 한나와 엘가나의 가슴이 아팠을까? 아들 하나를 원했고, 그 아들을 서원하여 하나님께 받았고, 그 아들을 또한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드린 한나는 이제 그녀의 슬하에 아들이 없다. 하나님이 자녀를 더 주신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비록 기쁨에 가득 찬 감사의 노래를 부른 한나이지만, 왜 그녀의 가슴속에 고통이 없었을까? 그녀의 가슴에 고통이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그녀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이해하는 것이고, 마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산을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가슴속에 어떠한 연민이나 고통이 없이 오직 기쁨만이 가득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 최선의 것으로 최고의 것으로 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적선하듯이 거지에게 동냥을 하듯이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때, 최선의 것으로, 최고의 힘을 다해서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물이 되는 것이다. 그 예물에 내가 담겨 있지 않으면, 그것은 온전한 예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나와서 피곤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여러분 모두는 정말로 최고의 것으로, 최선의 것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나 힘이나 예물이 그저 우리의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우리가 그것을 드림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는 그것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는 자녀들이 되자.

12.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한나의 찬양은 누가복음 1:46-55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양과 함께 여인의 찬양으로서 성경에서 쌍벽을 이루는 찬양이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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