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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삼상 6:13-7:2)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벧세메스라는 제사장의 동리를 선택했다. 벧세메스의 주민들은 여호와의 궤의 귀환을 기뻐하였고, 그 궤를 싣고 온 수레를 패고, 암소 두 마리를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곧바로 벧세메스 주민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들여다보고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섬기는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가?

1.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하였는가 (6:13/참조, 수 21:16)?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Now the people of Beth Shemesh were harvesting their wheat
        in the valley,
        and when they looked up and saw the ark,
        they rejoiced at the sight.
(답)        (1) 눈을 들어 궤를 보고
        (2)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였다.
(해설)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대로 벧세메스는 유다 지파에 속한 레위인들인 제사장들이 거하는 성읍이었다. 레위지파는 그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으로 나뉜다. 그핫 자손은 아론 자손 즉 제사장 가문을 포함한다. 각 지파는 각각 다음의 지역에서 살았다.
        (1) 그(고)핫 자손 중 아론의 자손들: 유다 지파, 시므온 지파, 베냐민 지파, 13성읍
        (2) 그 남은 그핫 자손들: 에브라임 지파, 단 지파, 므낫세 반 지파, 10성읍
        (3) 게르손 자손들: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므낫세 반 지파, 13성읍
        (4) 므라리 자손들: 르우벤 지파, 갓 지파, 스불론 지파, 12 성읍
이 중에 아론의 자손들 제사장이 살고 있던 13성읍은 다름과 같다:
        (1)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 기럇아르바 (즉, 헤브론), 립나, 얏딜, 에스드모아, 홀론, 드빌, 아인, 윳다, 벧세메스 -- 9성읍
        (2) 베냐민 지파: 기브온, 게바, 아나돗, 알몬 -- 4성읍
그러므로 벧세메스는 레위 지파의 그핫 자손 중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들이 살고 있던 열 세 성읍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자기들의 도시로부터 가까우면서도 제사장들이 살고 있던 성읍인 벧세메스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암소들이 가도록 하고 그 뒤를 따라 갔던 것이다. 마침 벧세메스 사람들은 골짜기에 있는 자기들의 밀밭에서 밀을 추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들어 암소 두 마리가 아무런 사람들의 인도를 받지 않고도 무엇인가를 싣고, 블레셋 쪽에서 오는 것을 보았다. 벧세메스 주민들은 상당수가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다 잘 알고 있었다. 약 7-8개월 전에 일어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약 3만의 군사가 죽임을 당하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고, 무엇보다도 더 경악할만한 사건은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이 일로 제사장 엘리는 비참하게 죽고, 법궤와 제사장이 없는 실로의 성막은 거의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유다와 시므온과 베냐민 지파에 흩어져 사는 아론 지파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모든 레위인, 모든 이스라엘이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여호와께서 블레셋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독종으로 치시고 계시다는 내용을 들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법궤를 이스라엘로 곧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날이 이르러서 블레셋에서 법궤는 암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실려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 암소를 이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그들이 젖먹이는 송아지를 강제로 집에 남겨 두고 왔기에 울면서 수레를 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벧세메스로 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수레를 정확하게 오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2.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서자, 무리가 어떻게 하였는가 (6:14/참조, 레 1:3; 딤후 4:5-8)?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The cart came to the field of Joshua of Beth Shemesh,
        and there it stopped beside a large rock.
        The people chopped up the wood of the cart
        and sacrificed the cows as a burnt offering to the LORD.
(답)        (1)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2) 그 소(들)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다.
(해설) 사무엘상 기자는 어떤 사건을 기록함에 있어서 매우 정확함을 보여준다. 이 기사에서도 블레셋에서 보낸 암소들이 끈 수레가 멈춘 장소가 정확하게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멈추어 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여호수아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제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먼저 그 암소들이 끌어온 수레를 도끼 등을 이용하여 장작으로 만들었다. 새로 만들어진 수레를 아낌없이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밭 곁에 있는 큰 돌 근처에서 여호와께 번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법궤를 끌어온 두 마리의 암소를 잡아서 여호와께 번제로 드렸다. 제사장의 동리인 만큼 어떻게 단을 쌓는지, 어떻게 번제를 드리는지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가 레위기를 읽은 대로 번제로 드리는 희생제물은 소나 양을 드릴 때는 반드시 수컷으로 드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레 1:3). 블레셋에서는 젖 나는 암소를 보내었지만, 율법을 잘 아는 제사장들은 과연 암소를 여호와께 드릴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이 암소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법궤와 속건제물을 이끌고 벧세메스로 잘 왔는데, 비록 울었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잘 왔는데, 또 온 몸을 바쳐서 주님께 드려져야 했던 것이다. 이 암소들의 이야기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의 한 부분이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5-8). 바울은 그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던 것이다. 관제란 피를 제단에 붇는 제사 의식을 말한다. 바울은 자기의 남은 모든 피를 주님의 제단에 부어 드려서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가 곧 순교할 것을 예상하고 디모데에게 한 말이다.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암소들이 울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자기들이 가는 이 길이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들의 송아지들을 생각하며 운 것이 아닐까? 암소들도 자기들의 죽을 때를 알고, 그 죽음이 바로 거룩한 희생으로 드려지는 것임을 알았을 때, 사도 바울은 그것을 왜 몰랐을까? 더욱이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을 말씀하실 때마다, 체포당하시고, 장로들에게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늘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고, 영화를 누리고, 높아지려고 해서는 잘못 되는 것이다. 주님을 따라 가는 삶은 곧 낮아지는 길이요, 비우는 길이요, 섬기는 길이요, 죽는 길이요, 십자가를 지는 길인 것이다 (막 10:35-45; 빌 2:5-11). 모든 문제는 섬긴 후에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데에서 온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동안은 우리에게 사례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3. 누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었으며, 그날에 누가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렸는가 (6:15)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The Levites took down the ark of the LORD,
        together with the chest containing the gold objects,
        and placed them on the large rock.
        On that day the people of Beth Shemesh offered burnt offerings
        and made sacrifices to the LORD.
(답)        (1) 레위인(들)
        (2) 벧세메스 사람들
(해설) 여기서 말하는 레위인들이란 곧 아론 자손 제사장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와 금 보물 상자를 내려서 그 큰 돌 위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들을 드렸다.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전의 기능이 이제 벧세메스의 여호수아의 밭의 곁에 있던 돌로 임시적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러나 법궤만 있었지 다른 것이 없었으므로 그냥 그대로 두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상태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궤가 돌아온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4. 블레셋의 다섯 방백은 그 동안 어떻게 하였는가 (6:16/참조, 눅 16:8)?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The five rulers of the Philistines saw all this
        and then returned that same day to Ekron.
(답) 이 (모든) 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다.
(해설) 아마 블레셋 방백들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벧세메스의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가를 잘 보고 돌아간 것이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더 이상 자기들을 심판하고, 벌을 주시는 일은 하지 않으시리라는 기대를 안고 돌아갔다. 이방인 블레셋 사람들이 한 이러한 행동은 아주 사려 깊은 것이었고, 그들로부터 여호와를 떠나가시게 하고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지혜를 다 짜내어서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혜를 다 짜내어서 하나님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눅 16:8)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면 순결함과 아울러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혜는 지식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 10:16)는 주님의 말씀대로 지혜와 순결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5.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로 드린 금독종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를 위한 것인데, 그 다섯 도시의 이름은 무엇인가 (6:17)?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These are the gold tumors the Philistines sent
        as a guilt offering to the LORD
        --one each for Ashdod, Gaza, Ashkelon, Gath and Ekron.
(답) (1) 아스돗 (2) 가사 (3) 아스글론 (4) 가드 (5) 에그론
(해설) 사무엘상 저자는 여기서 다시 블레셋 사람들이 드린 다섯 개의 금독종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다섯 도시들을 거론한다.

6.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드린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무엇의 수효대로 드린 것이었는가 (6:18)?
18        드린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And the number of the gold rats was
        according to the number of Philistine towns belonging to the five rulers
        --the fortified towns with their country villages.
        The large rock, on which they set the ark of the LORD,
        is a witness to this day in the field of Joshua of Beth Shemesh.
(답)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
(해설) 또한 다섯 개의 금쥐는 블레셋의 다섯 방백에게 속한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시골 동리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3만이나 잃는 패배를 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법궤와 함께 블레셋을 심판하시고, 그들로부터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으로 예물까지 받으신 것이다.

7.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사 몇 명을 죽이셨는가 (6:19상/참조, 민 4:5-6, 15)?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But God struck down some of the men of Beth Shemesh,
        putting seventy of them to deat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the ark of the LORD.
(답) (오만)칠십인
(해설) 그런데 갑자기 경악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벧세메스 거민들이 여호와의 법궤의 안을 바라본 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사 70인이 죽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최근에 우리가 읽은 민수기 4장으로 가보자.
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When the camp is to move,
        Aaron and his sons are to go in
        and take down the shielding curtain
        and cover the ark of the Testimony with it.
민수기는 아직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있을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민수기 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할 때, 성막과 그 안의 각종 기구들을 어떻게 이동하고 누가 이동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성막 안의 기구들을 이동할 때, 고핫 자손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먼저 기록된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고핫 자손은 아론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과 일반 고핫 자손들로 나뉜다. 5절에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할 일이 먼저 기록된다. 즉 그들은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장 즉 휘장을 걷어서 증거궤를 덮는다.
6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Then they are to cover this with hides of sea cows,
        spread a cloth of solid blue over that
        and put the poles in place.
그리고 6절에 보면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다시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법궤의 채를 꿰어야 한다. (법궤의 채는 보통을 꿰어 놓아야 하는데, 아마 이때는 해달의 가죽과 순청색 보자기로 덮기 위해서 채를 빼었다가 다시 꿰어 놓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1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After Aaron and his sons
        have finished covering the holy furnishings and all the holy articles,
        and when the camp is ready to move,
        the Kohathites are to come to do the carrying.
        But they must not touch the holy things or they will die.
        The Kohathites are to carry those things that are in the Tent of Meeting.
그리고 15절에 가서 보면 이제 행진을 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들을 덮기를 마친 후에 고핫 자손이 와서 그 물건들을 메게 되어있었다. 그들은 단지 어깨로 메어서 나르는 역할만 하지, 심지어 그것을 만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만졌다가는 곧 죽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법궤의 윗덮개를 덮고, 휘장으로 싸고, 해달 가죽으로 싸고, 순청색 보자기로 싸는 것을 통하여 법궤의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법궤의 안쪽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즉 고핫 자손이라고 해도 언약궤의 바깥 부분이라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혹은 잘 알아야만 하는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의 안쪽을 바라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만약에 법궤가 휘장이나, 해달 가죽이나, 순청색 보자기로 쌓여 있었다면 그것들을 벗기고, 윗덮개를 열고, 그 안쪽을 바라다보았다는 것이다. 이 일로 (오만) 70명이 죽었다고 하였는데, 한, 두 명이 바라다보았는지 혹은 70명이 바라다보았는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알다시피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하심이 그만큼 크시고 완전하다는 의미도 된다. 언약궤가 블레셋에 머물렀던 시간이 7개월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블레셋의 무수한 사람들이 독종으로 죽었듯이, 벧세메스에서 언약궤를 본 일이 있은 후에 (오만)70명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 (오만) 칠십 명이라고 되어 있을까? 히브리 원어 성경을 마쏘라 사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오만 칠십 명이라고 되어있다. 또 히브리 원어 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도 오만 칠십 명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벧세메스가 그리 크지 않은 동리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예수님 시대의 유대학자였던 요세푸스의 제안에 따라, 즉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 오만을 제외하고, 칠십 명만을 남긴 것이다. 이렇게 번역한 예가 바로 영어 NIV인 것이다. 그러나 주석학자들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죽인 숫자가 3만이요, 블레셋에서 독종으로 무수한 사람이 죽었듯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5만 이상이 죽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냥 성경이 오만 칠십이라면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8. 여호와께서 벧세메스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그들이 애곡한 후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6:19하-20/참조, 삼하 6:1-11; 갈 6:7-10)?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The people mourned
        because of the heavy blow the LORD had dealt them,
        and the men of Beth Shemesh asked,
                "Who can stand in the presence of the LORD, this holy God?
                To whom will the ark go up from here?"
(답)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해설) 이제 벧세메스에 공황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궤가 들어온 것이 그들에게 복이 된 것이 아니라 저주와 심판이 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의 실체의 일부를 깨닫고, 체험하고 공황이 일어난 것이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공황을 겪은 것이나 동일한 것이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거기까지는 좋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심각하다.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나님과 떠나서 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불편하고, 죽음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가 곧 하나님을 떠나가시게 하는 것이다. 제사장의 동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까? 사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지도력의 부재를 볼 수 있다. 돌이며 보면 대제사장 엘리가 죽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아직 어린 사무엘이 충분히 자라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현재 영적인 지도력의 부재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영적인 지도력이 있었다면, 제사장이 아닌 고핫 자손들을 보내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 실로로 모셔 올라왔어야 한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냥 무조건 여호와의 언약궤가 자기들의 동리에서 떠나기 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사무엘하 6: 1-11에도 나온다.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David again brought together out of Israel chosen men,
        thirty thousand in all.
2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He and all his men set out from Baalah of Judah
        to bring up from there the ark of God,
        which is called by the Name,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who is enthroned between the cherubim that are on the ark.
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They set the ark of God on a new cart
        and brought it from the house of Abinadab,
        which was on the hill. Uzzah and Ahio, sons of Abinadab,
        were guiding the new cart
4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with the ark of God on it,
        and Ahio was walking in front of it.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David and the whole house of Israel were celebrating
        with all their might before the LORD,
        with songs and with harps, lyres, tambourines, sistrums and cymbals.
6        저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When they came to the threshing floor of Nacon,
        Uzzah reached out and took hold of the ark of God,
        because the oxen stumbled.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The LORD'S anger burned against Uzzah
        because of his irreverent act;
        therefore God struck him down and he died there beside the ark of God.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Then David was angry
        because the LORD'S wrath had broken out against Uzzah,
        and to this day that place is called Perez Uzzah.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David was afraid of the LORD that day and said,
                "How can the ark of the LORD ever come to me?"
10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He was not willing to take the ark of the LORD
        to be with him in the City of David.
        Instead, he took it aside to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The ark of the LORD remained in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for three months,
        and the LORD blessed him and his entire household.
다윗은 고핫 자손을 동원하여 어깨에 메게 하는 대신에 소와 수레로 언약궤를 끌게 하는 우를 범하였다. 결과적으로 소가 뛰고, 웃사가 손을 대어 잡다가 죽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블레셋이나, 벧세메스나, 심지어 다윗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섬기려니와, 대충 섬기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께 커다란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냥 적당히 섬겨서 될 분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알면서, 혹시 남들이 속듯이 하나님도 속을 줄로 아는 것은 엄청난 착각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하나님이 복을 쌓을 곳이 없이 퍼부어 주실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아는 것 같지만, 사랑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행하기까지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줄로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기도만 하면 공부를 잘 할 줄로 아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그 과정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 결과를 감사하며, 그 결과로써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한다. 이러한 사실을 그림같이 잘 설명해 놓은 곳이 바로 갈라디아서 6장인 것이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Do not be deceived:
        God cannot be mocked.
        A man reaps what he sows.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The one who sows to please his sinful nature,
         from that nature will reap destruction;
        the one who sows to please the Spirit,
        from the Spirit will reap eternal life.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Therefore, as we have opportunity,
        let us do good to all people,
        especially to those who belong to the family of believers.


9. 벧세메스 백성들의 사자들이 사자들을 어느 거민에게 보내어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고 말하였는가 (6:21/참조, 수 21:11)?
21        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Then they sent messengers to the people of Kiriath Jearim,
        saying,
                "The Philistines have returned the ark of the LORD.
                Come down and take it up to your place."
(답) 기럇여아림
(해설) 기럇여아림 즉 헤브론도 유다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성읍이다 (수 21:11). 벧세메스의 거민들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거민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법궤를 가져가도록 했다. 벧세메스 거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10.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어 놓은 후, 어떻게 하였는가 (7:1)?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So the men of Kiriath Jearim came
        and took up the ark of the LORD.
        They took it to Abinadab's house on the hill
        and consecrated Eleazar his son
        to guard the ark of the LORD.
(답)         (1)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2)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해설) 기럇여아림의 거민들은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법궤를 옮겼는지는 모르지만, 여호와의 궤를 옮겨서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거룩함과 구별됨은 항상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왕에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왜 벧세메스 사람들은 재난을 당하였는데, 기럇여아림 주민들은 복을 받았는가? 우리는 그것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의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11.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 후, 온 이스라엘 족속의 영적인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가 (7:2)?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It was a long time, twenty years in all,
        that the ark remained at Kiriath Jearim,
        and all the people of Israel mourned and sought after the LORD.
(답) “온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였다.”
(해설) 사무엘상 기자는 여기에서 20년을 멋지게 건너뛴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있고, 사무엘은 실로에 있으면서 20년이 흐르고, 이제는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는 영적인 부흥의 시대가 온 것이다.

11.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 오늘의 기도제목 ***
1.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2. 목적이 이끄는 삶 캠페인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온전히 새롭게 되게 하소서.
3. 우리 교회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4. 21일에 있을 여선교회 거라지 세일이 좋은 효과가 있게 하소서.
5. 27일과 28일 양일간 있을 청소년부 30시간 기아체험을 통하여 은혜를 주소서.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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