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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과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삼상 4:1-11)

엘리의 가문에 대한 두 번에 걸친 심판의 예언은 (삼상 2:27-36; 3:10-14)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모시고 나갔고,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진중에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대패하였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겼으며,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이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삼상 2:34)고 예고한 대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가?

1.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대하여 항오를 벌이고 둘이 싸운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1-2/참조, 삼상 7:12)?
1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2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답)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군사가 4,000 명 가량이었다.
(해설) 사무엘상 4장은 지금까지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의 형태로 임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일이다. 또한 질병, 천재지변 등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엘리의 가문에 몰락하는 과정과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의 선지자로 이스라엘 가운데 등장하는 것은 서로 오버랩된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쟁 상황으로 몰아 넣으신다. 아마도 이번 전쟁은 어떤 이유였든지 간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사 삼손 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전쟁은 에벤에셀과 아벡 사이에서 벌어졌다. 에벤에셀이라는 지명은 7장에도 나온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2절). “도움의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지명은 사무엘이 이스라엘 전체에 선지자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아벡과 에벤에셀 사이라는 이 지명은 7장의 에벤에셀과는 동일한 곳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의 서전에서 패해서 약 4,000의 군사를 잃었다. 전쟁 자체도 문제이지만,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더 문제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여러 가지 전쟁이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그 전쟁이 패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그 문제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된다. 오늘 공부는 우리의 문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2.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며 어떤 제안을 하였는가 (3/참조, 삼하 11:11; 마 5:23-24)?
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답)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해설)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태도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의 모든 책임이나 원인을 하나님께 두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닐까? 관계 회복이 없는 회개는 없다. 화목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고, 그 결과 관계 회복이 오는 것이다. 모든 관계 회복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문제를 자기들에게 두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둔 듯하다.
        그들이 이 패배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은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전쟁터로 옮겨와서 자기들 중에 그것이 있게 하여, 그것으로 자기들을 그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할 생각을 하였다. 그 자체는 이해될 수 있다. 다윗도 암몬과의 전쟁에서 자신은 왕궁에 있었어도 하나님의 언약궤는 전장에 나가 있도록 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불러서 술을 먹인 후, 집으로 가서 아내와 자라고 했을 때, 우리야가 뭐라고 했었는가? “우리야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삼하 11:11).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나간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 없이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승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발상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믿음이 좋아 보이게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태도이지, 하나님께 순복하려고 하는 태도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없이 하나님을 사용하려고 하는 태도는 일종의 업유즈 (abuse)인 것이다. 일종의 악용, 일종의 오용인 것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관계의 회복은 무시하고, 예배를 드렸기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고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적이 많았는가?
        더욱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도록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져오기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분명히 잘못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어떻게 하였는가 (4/참조, 출 25:10-22)?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답)        (1)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2)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다.
(해설) 출애굽기 25장은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한 내용이 처음으로 언급된다. 출애굽기 25장을 보자. 언약궤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언약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상징하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물이다. 일체의 상징물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 마치 선물이 없이 사랑을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음과 선물을 생각해 볼 때, 진정한 마음이 있으면 선물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상징물도 역시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상징물과 우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오해인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돕는 사람들이나, 체계, 물건 등이 있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성심으로 섬겨야 한다. (2)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돕는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을 사랑한다. 교회나 교회의 조직을 사랑한다.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성경이나 십자가 기타 신앙서적 등을 존중한다. (3) 그러나 윗의 것들이 하나님을 대치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언약궤 그 자체가 하나님을 대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것은 곧 우상이 된다. (4) 그러나 위의 것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마치 개혁인 양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윗의 것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돕는 한에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언약궤는 그 안에 십계명을 받은 돌판을 보관하면서, 그 윗면의 양쪽에 천사 즉 그룹을 쳐서 만들어 놓고, 그 양 천사와 윗면 사이의 공간에 하나님이 임하시는 공간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언약궤는 두 개의 채로 어깨에 매고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사무엘상 4장, 5장, 6장은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우리가 언약궤를 잘 공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이스라엘은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아벡 전장으로 이동시켰고, 그 일로 자연스럽게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장에 나오게 되었다.

4.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였는가 (5)?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답)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렸다.
(해설) 이제 이스라엘은 승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큰 소리로 외쳤고, 이로 인하여 땅이 울릴 정도였다. 백성들의 사기가 진작된 것이다.

5.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하다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6)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답)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
(해설) 이것은 곧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 아마도 그들도 나름대로 정보를 얻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정보는 너무나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知彼知己 百戰不敗: 원래 원문에는 백전불패인데 더 쉬운 말인 백전백승으로 바뀌어서 알려졌다.)라는 말이 손자병법에 나오는데,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보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블레셋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진에 이스라엘의 종교의 최대의 상징물인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6.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하고 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7)?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답)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해설) 이 일은 블레셋을 긴장시키게 되었다. 그들은 언약궤의 출현을 곧 이스라엘의 신의 출현으로 이해하였다. 언약궤를 가지고 온 이스라엘의 목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블레셋은 이것이 곧 자기들에게 군사적인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온 것을 블레셋은 이전에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긴장한 것이다.

7. 블레셋 사람들은 “우리에게 화로다”라고 말하면서 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8/참조, 수 2:8-11)?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답)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들을 친 신들이니라”
(해설) 블레셋은 근본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를 믿고 있었다. 사실 유일신교는 오직 이스라엘에서만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에 복수로 “이 능한 신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지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런 지식이었다. 즉 사이비이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주면서 무엇이라고 고백했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수 2:9-11). 라합의 정확한 지식, 혹은 정보는 곧 그녀와 그 가족 친지의 구원으로 연결되었다.

8. 블레셋 사람들은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하며 대장부가 되어라”라고 하며, 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9/참조, 삿 13:1, 5; 16:28-31)?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답)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해설) 그런데 언약궤를 전장에 가지고 나온 이스라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블레셋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겁을 먹던 상황에서 오히려 대장부가 되는 상황으로 반전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히브리 사람들은 사사 삼손의 시대부터 시작되어서 블레셋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아내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니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삿 13:5). 즉 구원이 아니라 구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삼손은 혼자의 몸으로 블레셋과 싸우다 죽고 말았다. 그러나 블레셋은 계속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9.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쳤더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10-11/참조, 삼상 2:34; 대하 7:14)?
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 만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답)        (1)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2)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 만이었으며
        (3)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4)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
(해설) 참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엘리에게 경고한 대로(삼상 2:34),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었다. 이스라엘의 보병 즉 백성이 30,000명이나 죽었다. 그리고 법궤를 빼앗겼다. 이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잘못된 의뢰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진정한 회개로 이끄시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은 후에도 역시 성전으로 인하여 구원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성전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모든 회복은 회개로부터 나온다. 진정한 부흥은 회개에서 나온다.

10.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답)
(해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원한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서 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했는가? 눈에 보이는 지도자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아론을 재촉해서 금송아지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려고 하였다. 마치 이스라엘이 언약궤로 하나님의 대치하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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