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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과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삼상 14:16-23)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의 믿음과 헌신의 공격으로 블레셋의 진이 흩어지자,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군인들에게 커다란 떨림과 공포를 임하게 하셨다. 그러자 사울이 그의 백성들과 블레셋을 공격하여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왔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전에 블레셋을 보고 숲에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에게 합류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1.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어떻게 되고 있었는가 (16/참조, 마 17:19-21)?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Saul's lookouts at Gibeah in Benjamin saw
        the army melting away in all directions.
(답)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졌다.
(해설)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것은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의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헌신이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헌신이 없는 것은 그 믿음이 일을 하지 못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높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초청하여 당신이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에 세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그 모습이 놀랍게 변화되신 일이 있었다. 이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아홉 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 사람이 귀신이 들린 자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제자들이 그 귀신을 능히 내어 쫓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후, 그 사람은 예수께 다시 간구하였고,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제 19절을 보자.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Then the disciples came to Jesus in private and asked,
                "Why couldn't we drive it out?"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He replied,
                "Because you have so little faith.
                I tell you the truth,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t will move.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21                (없음)
                But this kind does not go out except
                by prayer and fasting.
아홉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충만하였다. 그들은 조용한 시간을 보아서 예수님께 와서 그들이 왜 귀신을 내어 쫓지 못했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라고 먼저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너희 믿음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작았을까?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아홉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다음에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척 중요하니 잘 듣고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너무 작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씨들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를 들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즉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의 크기가 그 겨자씨만큼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겨자씨라는 말씀을 하실 때, 단지 겨자씨의 물리적인 크기만 말씀하신 것일까?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겨자씨의 생물적인 생명력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즉 겨자씨는 그렇게 작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어서 조건이 갖추어지면 발아하여 놀라운 나무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함께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산을 옮길 수 있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그 마음이 성령님의 터치하심으로 변화를 받아 감동을 받고, 결심을 하고,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구원받게 하는 성령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악한 귀신은 오직 금식과 기도로만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금식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는 이론으로의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겨자씨만한 믿음, 그러나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믿음이었기에 그들의 믿음은 곧 헌신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단 둘이서 이스라엘의 진을 떠나 가시 같은 세나 바위를 넘고, 깊은 계곡을 넘어, 다시 얼음 같이 미끄러운 보세스 바위를 넘어 블레셋 적진으로 들어갈 때,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바로 헌신이다. 그들의 그렇게 헌신할 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블레셋 진영에게 떨림과 공포를 주셨다. 그 떨림은 정신적인 떨림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땅까지 진동하는 떨림이었다. 그리하여 블레셋 진영은 말 그대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사실이 기브아 쪽에 머물던 사울의 진의 파숫군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글 성경은 이런 면에서 단수와 복수를 잘 구별하지 않고 번역하는 상례가 있다. 그래서 파숫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주로 혼자 파수를 보지 않기에 파숫군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분명히 복수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울이 아무리 의기소침해 있었을지라도, 한 가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파숫군들을 세운 것이다. 도망을 가든, 그 자리에 있든, 공격을 하던 간에 적진의 상태를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였는데, 적을 아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파숫군을 세우는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2.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하고 점고한즉, 누가 없어졌는가 (16-17/참조, 1)?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
        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가 없어졌더라
        Then Saul said to the men who were with him,
                "Muster the forces and see who has left us."
        When they did,
        it was Jonathan and his armor-bearer who were not there.
(답)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
(해설) 파숫군들은 블레셋 진영에 있는 혼란에 대하여 사울에게 긴급하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사울은 갑자기 집히는 데가 있었다. 요나단이 당분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급히 자기 백성들에게 인원 점검을 해 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단과 그 병기든 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자기 아들이 없어졌는데도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3. 사울이 제사장 아히야에게 이르되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18/참조, 삼상 7:1-2)?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Saul said to Ahijah,
                "Bring the ark of God."
        (At that time it was with the Israelites.)
(답)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해설) 사울은 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싶었다. 적군은 몇 십만이요, 자기는 겨우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블레셋 군대 안에 혼란이 있다고 하여도 선뜻 공격해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데도 다시 하나님께 여쭈어보려고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로써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가 전장에 나온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에게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쟁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면 이기는 것이요, 바르지 못하면 지는 것이 오늘까지 성경을 본 결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거의 다 공포에 떨며 숨었고, 사울은 의기소침해 있었고, 제사장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궤를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요나단의 살아있는 믿음과 사울의 하나님의 궤를 의지하는 믿음은 여기서도 보기 좋게 하나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4.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심해지자 사울이 제사장 아히야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19)?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While Saul was talking to the priest,
        the tumult in the Philistine camp increased more and more.
        So Saul said to the priest,
        "Withdraw your hand."
(답) “네 손을 거두라”
(해설) 사울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오라”고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 심해졌다. 자칫하면 블레셋을 섬멸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사울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제사장에게 “네 손을 거두라”고 명한다. 눈앞에 명명백백하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궤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사울이 했던 많은 결정들 중에서 많지 않은 바른 결정들 중의 하나이다.

5.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20)?
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Then Saul and all his men assembled and went to the battle.
        They found the Philistines in total confusion,
        striking each other with their swords.
(답)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해설) 사울은 제사장 아히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궤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계획을 즉각 취소하고 자기의 백성들과 함께 블레셋 진으로 달려갔다. 블레셋 진은 믹마스에 있었고, 사울과 백성들은 믹마스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블레셋의 진에 가서 놀라운 일을 발견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 동료들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블레셋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전쟁은 냉엄한 것이다. 전쟁에서 최악의 상태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는 것이다. 블레셋은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지금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밤에는 자신의 군대를 스스로 치는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지금은 밤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의 상황은 극도의 공포 상태에 빠진 블레셋이 그 공포를 어찌할 줄 몰라서 극한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살려고 하는 전쟁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서로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 안에서 서로 분열이 일어나고, 서로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의 전쟁은 하나마나 뻔히 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패배란 적에게 지기 이전에 자신에게 먼저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블레셋에게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하신 이유이다. 우리가 교회 건축 부지 마련이라는 커다란 일종의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 있어서 제일 먼저 있어야 하는 일이 바로 우리 안에서 단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단 교회의 정책이 수립되고, 교회의 방향이 결정된 상황에서 자기의 생각과 믿음과 말과 행동이 교회의 방향에 맞추어 지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6. 누가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는가 (21)?
21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 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
        Those Hebrews who had previously been with the Philistines
        and had gone up with them to their camp
        went over to the Israelites who were with Saul and Jonathan.
(답)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음”
(해설) 이제 사울과 요나단의 이스라엘 군에는 기적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군사가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블레셋 군에서 빠져나온 군사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블레셋 사람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전에 블레셋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들로서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의 민족을 찾아 이스라엘로 속속 합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블레셋의 편에 있으면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즉 동족에게 죽게 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러면 이 히브리 사람들은 왜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였을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블레셋이 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아서 군인으로 이끌고 온 사람들일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이스라엘에 불만을 품고 블레셋에 합류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면 블레셋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에 블레셋이 이길 것 같으므로 블레셋 편에 섰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돌아올 때, “저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부터 죽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이스라엘에서 반응을 하지도 않았다. 위 세 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을까? 아마 첫 번째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육이오 동란이 일어났을 때를 상상해 보자. 북의 인민군이 쳐들어왔다. 그중에 남한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첫째로 북에 잡혀갔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둘째 남한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북의 사회를 동경해서 북으로 갔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셋째 북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에 잽싸게 북의 편에 서서 남한을 공격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한 가족 안에서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기에 이런 모든 경우들이 다 있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에도 우리 민족을 압제하던 우리 민족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을 주실 때에 우리에게서 나가 세상에 빠져서 우리를 공격하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까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들과 동화되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대동단결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잘 해결해야 하지만, 과거만을 붙들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7. 또 누가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는가 (22/참조, 13:6-7)?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When all the Israelites who had hidden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heard that the Philistines were on the run,
        they joined the battle in hot pursuit.
(답)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
(해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기적은 전에 사울의 명령에 의해서 전장에 왔다가 블레셋의 위용에 겁에 질려서 복지부동, 자기의 있던 곳에서 최대한 빨리 숨었던 사람들이 이제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고 사울과 블레셋의 군대에 합류한 것이다. 그들의 상황은 13장 6-7절에 잘 나타나 있다. 기드온의 전쟁 때에는 하나님이 300명의 용사만 남겨 놓고 다 물러가게 했으나, 막상 기드온이 적들을 추격할 때는 먼저 보내었던 다수의 군사들이 미디안 적들을 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진에서도 에브라임 무성한 수풀에 숨었던 모든 사람들도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을 알고 숨었던 곳에서 싸우려고 나와서 블레셋을 추격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전쟁에서 누가 가장 속도가 빠른가? 가장 속도가 빠르고 믿음이 출중한 사람은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이다. 전쟁도 요나단에 의해서 일어났고,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전세를 뒤집는데 공을 세운 사람도 역시 요나단이다. 사울이나 다른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서둘기만 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분명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믿음으로 하여금 일하도록 했고, 그리하여 그 믿음은 헌신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나단과 그 병기든 자와 같이 믿음과 헌신이 출중한 사람을 주시기를 기도하자.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둘째는 사울과 그의 600명의 군사들이다. 다 도망가는데 이 600명은 어떤 이유로라도 도망가지 않았고, 사울을 따랐고, 사울을 지켰다. 그래서 요나단에 의해서 공격이 일어나고, 하나님이 블레셋 진에 떨림과 진동과 공포를 주었을 때에 비록 순간적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지라도,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진으로 달려가서 자중지란에 빠진 적들을 공격하였다. 아무리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공격을 하였어도, 이 600명의 군사들이 없었더라면 이 전쟁은 또 다른 양상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사울도 역시 자신이 왕이라는 위치를 지키며 혼란과 좌절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백성들을 버리고 완전히 뒤로 도망가는 일을 하지는 않았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사울과 이 600명의 군인들도 정말로 훌륭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비록 잠시 작전상 후퇴는 하였지만, 아주 뒤로 물러가 넘어져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셋째는 비록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블레셋 편에 가담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블레셋을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들이 블레셋과 함께 있으면 그들에게 닥칠 일은 죽는 일 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전에는 자의이던 타의이던 이스라엘을 해치는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자기의 조국과 민족에게로 돌아와서 떳떳하게 싸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적에게서 100의 숫자를 빼서 우리에게 100의 숫자를 더하면, 벌써 그 차이가 200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적을 주실 때 하시는 일이다. 정말 기도하기는 우리 교회가 엄청난 일을 앞에 두고 먼저 부흥의 역사부터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람을 끌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돌이키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자. 또한 우리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오더라도 그들을 순수하게 받아 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로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평소에는 적의 위용만 보이고 하나님의 현존은 믿지 않는다. 그러한 믿음이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만 급급하다. 숨을 곳을 찾는다. 아프지 않게 넘어질 곳을 찾는다. 바짝 엎드려서 눈과 귀만 열어 놓고 상황을 살핀다. 너무 멀리 도망갈 용기와 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회를 주셨을 때, 이들은 자기들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리품도 얻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리는 이러한 사람들이 살아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이제 막 교회에 온 학생들까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마음으로부터라도 함께 할 때 기적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네 그룹 사이에서 속도나 믿음의 양의 차이는 있었지만, 최소한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그룹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사무엘은 그 자리를 떠났지만, 하나님은 요나단으로 인하셔서 이스라엘을 계속적으로 이끌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블레셋에는 자중지란이 일어났지만, 이스라엘 안에는 자체 분열과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도 최소한 반대 방향으로 끄는 사람들도 없어야 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고,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앞선 사람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비전을 보여 줄 때,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같은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8.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어디를 지났는가 (23)?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So the LORD rescued Israel that day,
        and the battle moved on beyond Beth Aven.
(답) “벧아웬”
(해설) 아웬의 집이라는 이곳은 “우상의 집” 혹은 “사악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믹마스 서북쪽에 있는 고이다. 이제 전장은 믹마스에서 남서쪽에 1km 정도 지점에 있던 벧아웬 쪽으로 블레셋 군인들이 도망가는 것을 따라서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9.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23)?
(답)
(해설)

*** 오늘의 기도 제목 ***
1. 우리에게 한 마음과 한 뜻을 주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먼저 요나단과 그 병기든 사람과 같은 믿음과 헌신이 있게 하여 주세요.
3. 우리에게 사람들을 붙여 주기를 원합니다.
4.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5. 교회 부지 매입을 위한 전교인 헌금 약정에 전교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님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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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24) (8/18/04)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13:16-14:15)

    제 24 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삼상 13:16-14:15) 블레셋의 군대는 해변의 모래와 같았으나,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울의 군대는 불과 600명 가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
    Date2004.08.18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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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23) (8/11/04)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13:1-15)

    제 23 과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삼상 13:1-15) 백성들이 원하던 대로 사울은 왕이 되었고, 사무엘은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만에 요나단은 블레셋을 공격하였고, 이 일로 양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상...
    Date2004.08.13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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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22) (8/4/04)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12:14-25)

    제 22 과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삼상 12:14-25) 우리는 지난주에 사무엘의 고별 설교의 앞부분을 공부하였다. 사무엘은 그의 고별 설교의 뒷부분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고, 그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명령...
    Date2004.08.05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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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21) (7/14/04)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12:1-13)

    제 21 과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삼상 12:1-13) 우리는 두 번에 걸쳐서 사무엘의 고별 설교를 공부하려고 한다.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별 설교와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는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사무엘의 심정과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정을 헤...
    Date2004.07.16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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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20) (7/7/04)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11:1-15)

    제 20 과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삼상 11:1-15) 비록 사울은 왕으로 뽑혔으나, 자기 동리로 돌아가서 소를 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이때, 요단강 동편 길르앗 야베스 지역에 암몬 족속의 나하스가 쳐들어와서, 모든 백성의 오른 눈을 뽑고, 더 나아...
    Date2004.07.08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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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9) (6/9/04)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10:14-27)

    제 19 과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삼상 10:14-27)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백성 앞에 세우시는 장면이다.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가족들에게까지도 고하지 ...
    Date2004.06.09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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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8) (6/2/04)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10:1-13)

    제 18 과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삼상 10:1-13)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다. 하나님은 또한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하자 사울은 또한 예...
    Date2004.06.0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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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7) (5/26/04)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9:15-27)

    제 17 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삼상 9:15-27) 오늘 우리는 사무엘과 사울의 첫 번째 대면에 대하여 공부한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목하심을 따라 사울을 만났다. 잃은 나귀를 찾으러 나섰다가, 그 나귀의 행방에 대해 묻기 위하여 ...
    Date2004.05.27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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