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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6, 2005 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 수요일일 집회
“때로는 억지로라도”
마가복음 15:21-23
최성호 목사 (고양 덕은침례교회 담임목사)

속도가 1024km (653mph)라면 엄청 빠르지요? 높이가 10,668m (35,000 ft)라면 엄청 높지요? 온도가 섭씨 -58도라면 엄청 춥지요? 이런 환경에서 인간이 살 수 있을까요?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그런 곳 근처에서 십 수 시간을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태평양 상공을 날고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비행기 밖의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비행기 안에 있었기에 편안하게 책도 보고, 잠도 자고, 음식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어떠한 위기로부터도 안전하게 거하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고난의 속도가 엄청나고, 삶의 고난의 높이가 너무도 높고, 삶의 고난의 온도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춥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훈련을 잘 받은 개는 며칠을 굶긴 다음에 맛있는 쇠고기 덩어리를 던져줘도, 주인의 먹으라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이런 개는 아주 비쌉니다. 중동 지역에서 아주 비싼 말은 우리 돈으로 수십억 원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말이냐 하면, 며칠씩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사막 길을 달려온 뒤에 물가에 갖다놔도 물을 안 마시고 주인의 허락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말은 겨우 몇 십 만원, 고기 값밖에 안 나가지만, 자기의 욕망과 감정을 절제하는데 길들여진 말은 수십억 원도 더 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가치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욱이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고,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더욱 육신의 욕망과 육신의 본능과 이기심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생활을 해야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라고 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5)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요사이 청소년들이 제멋대로 총질하고, 제 멋대로 술 마시고, 마약하고, 음란한 지 아십니까?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이나 육신의 이기심이나 육신의 이해타산을 따르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생활을 해야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5-8)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금욕주의나 이원론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육신은 무조건 악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제가 있는 엄숙주의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감정 기분대로, 육신의 소욕대로, 행동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하였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수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5-27)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삶의 태도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달콤한 것만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마귀에게 속는 생활이요, 타락의 생활을 하는 사람도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은 내 감정 기분에 맞지 않고 이해타산에 맞지 않아도 때로는 억지로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들의 기본은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와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렇게 되지 못할 형편, 환경이 온다할지라도 때로는 억지로 하는 것이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1. 억지로 진 십자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
본문에 보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아프리카 북부의 구레네라는 지역에서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유대인이 성지 순례에 왔다가, 마침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된 사건입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지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도 하나님이 그와 그의 자손에게 복을 주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봅시다.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바울이 당시 교계의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는 가운데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했는데, 이 본문에 나오는 루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구레네의 아들 루포라고 대부분의 신약성서 학자들이 믿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이라는 표현은 단지 구원받은 성도란 뜻이 아니라, “탁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중요한 인물로 여길 만큼 탁월한 존재가 되는 복을 받았고,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사도 바울이 “곧 내 어머니”라고 할 정도로 그녀는 귀한 존재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원해서나 기쁨으로 진 것이 아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데도, 그의 온 가정과 자손들이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고 기쁨으로 해야 원칙이고, 또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일을 하는데 기분이 안 내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안해야 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원하는 마음도 없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머지않아 타락하거나 마귀의 사람이 될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더 많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빠가 힘들어도 아빠의 역할을 하고, 엄마가 어려워도 엄마의 역할을 할 때에만 건강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사가 힘들어도 목사의 역할을 하고, 교사들이 어려워도 교사의 역할을 할 때에만 건강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렇게 베드로도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을 따라 사는 것은 육신의 정욕이나 감정과 배치되므로 사실 기쁨으로 일할 때보다 억지로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했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2.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하는 일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천국에 가면 계속적으로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나가고 예배드리는 일을 몹시 싫어하고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기분 내킬 때만 교회에 나오고 예배드린다면 백이면 백 다 마구에게 속아 넘어가고 결국 타락하고 맙니다. 더욱이 육신을 즐겁게 하는 생활을 위주로 한다면 주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서 하나님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우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로다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주일날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육신의 소욕을 좇는 길을 가지 아니하고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키며 예배드리는 것이 영을 좇아 사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그날따라 삼일 예배에 가기가 몹시 싫은 것을 억지로 발길을 옮겨 올더스 게이트에 있는 한 작은 모라비안 교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교회는 너무 작아서 목사님도 계시지 않아서, 목사도 아닌 한 평신도가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웨슬리 목사님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회심하는 체험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수요일 저녁에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고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지, 만일 교회에 가기 싫다고 안 갔으면 이런 엄청난 사건이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기 싫을 때, 드리기 싫을 때, 그때야말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입니다.
아들: 어머니, 저 오늘 정말로 교회가기 싫어요. 오늘 한번만 딱 빠지면 안 될까요?
어머니: 안된다. 가야 된다.
아들: 저, 오늘 교회에 가기 싫은 이유가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장로님 기도가 너무나 길어요. 그 기도 중에 저는 잠들어 버립니다. 둘째, 성가대에서 너무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들립니다. 셋째, 주일날 원 없이 늦잠 좀 자보고 싶어요.
어머니: 그래도 네가 오늘 교회에 가야할 진짜 이유가 세 가지 있단다. 첫째,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둘째, 사람보고 교회에 가느냐? 하나님을 보고 가는 것이기에 가야한다. 셋째, 결정적으로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가 아니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되는 것을 잊지 맙시다.

3. 헌금하고 드리는 생활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헌금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가장 좋은 헌금 방법은 최선을 다해서 헌금하고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렇다고 기쁨으로 드릴 마음도 없고, 자원하는 마음도 안 생긴다고 안해야 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헌금을 드릴 때, 마음도 정성도 하나님께 가기 때문에 마귀는 몹시 싫어하고 헌금하는 것을 적극 방해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감사 헌금이나 십일조 혹은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도 갑자기 인색한 마음이 들면서 하기 싫어 질 때가 있습니다.
(예화) 이웃 교회 목사님이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수요일 저녁에 평소에 헌금을 하지 않던 성도가 헌금 봉투를 강단에 올렸습니다. 별 생각 없이 그 봉투를 성경책에 끼웠습니다. 물론 주일날에 헌금위원들에게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헌금에 대하여 한 달 정도를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성경책은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한 달 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가 그 헌금 생각이 나서 그 성경책을 열어 헌금을 찾았습니다. 봉투는 그 성경책 속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헌금이 그대로 있나 보려고 봉투 안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 목사님은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헌금의 액수가 천만 원이 되는 자기앞 수표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한 달 동안 방치한 것이나, 그것을 잃지 않은 것이나, 그 액수로 인하여 너무나 놀랐습니다. 목사님은 헌금을 한 성도를 불러서 그 헌금의 사유에 대하여 묻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도는 평소에 그렇게 큰 액수의 헌금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성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적금을 들어서 일억 원을 타게 되었습니다. 속에서 천만 원의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헌금을 하기 싫었습니다. 주초에 적금을 탔는데, 수요일을 넘기고 주일까지 기다리면 마음이 변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그 헌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헌금하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의 사람은 억지로라도 육신의 생각을 꽉 누르고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억지로라도 헌금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가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어느 모임이나 회의에 가면 헌금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제 마음속에 이 모임이 저하고 큰 상관도 없는 것 같고, 헌금 시간이니까 안할 수는 없고 해서 천 원짜리 있으면 몇 천원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천 원짜리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러면 오천 원짜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천 원짜리도 없어요. 만 원짜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만 원짜리도 없어요. 지갑에는 십만 원짜리 수표만이 한 장 있었어요. 순간적으로 절대로 안 된다는 인색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억지로라도 욕심을 누르고 십만 원짜리 수표로 헌금을 하였습니다. 누구는 돈 아까운 줄 모릅니까? 그러나 억지로라도 바칠 때 바치고, 줄 때 주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복이 오고, 체험을 하고,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만 헌금하고, 부담 없이 헌금 생활하면 영적으로 성숙한 생활에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였을 때, 왜 그렇게 명하셨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백세에 낳은 이삭이 가장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원하셨기에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칠 때, 기분 좋아서 콧노래 부르면서 모리아 산에 가서 독자를 장작더미에 올려놓았겠습니까? 억지로 육신의 인정과 애정을 억누르고 이삭을 바쳤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감탄하시면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엄청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감사하면, 그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형편상 도저히 십일조 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십일조 하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복을 주나 아니 주나 시험해 보라”고 하셨겠습니까? 이 말씀은 하기 싫어도 아까워도 억지로라도 드려보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 가정과 그 후손이 복을 받은 것같이 억지로라도 헌금을 하는 습관을 가질 때 믿음이 자라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님께서는 종종 하나님 앞에 공짜가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헌신은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서 우리의 수고가 헛것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되 후히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억지로 하는 기도
가장 좋은 신앙은 TV 연속극 보는 것보다 하나님과 대면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더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 기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육신의 기분을 맞추느라고 이불을 걷어차지 못하고 쿨쿨 잠만 자면 결코 영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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