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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과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30:1-10)

다윗과 그의 600명의 군사들이 블레셋의 가드 방백 아기스를 따라 이스라엘 침공 작전에 불려갔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일보 직전에 자기들의 성인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침공하여 성의 모든 물건과 사람들을 사로잡아가고, 성을 불태운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였다. 다윗의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다윗을 돌로 치려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고, 상황을 극복해 나갔다. 다윗은 여호와께 여쭈어서 확신을 얻고, 적들을 쫓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계속되는 행군에 지친 200명의 군사들은 브솔 시내에 머무르고 400명만 아말렉을 쫓게 되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자.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David and his men reached Ziklag on the third day.
        Now the Amalekites had raided the Negev and Ziklag.
        They had attacked Ziklag and burned it,
“제 삼일에”라는 말은 전장에 나온 새벽 아직 미명에 일어나 날이 밝자 이스라엘을 떠난 날부터 “제3일 만에”라는 말이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시글락을 떠나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3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들이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 지역을 다 침노하고, 다시 시글락까지 침노하여 시글락을 공격하고, 완전히 불살라 버렸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은 철전지 원수지간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한 것이 바로 아말렉이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하셨다 (출 17:8-16).

사울 왕은 아말렉을 도말하라는 명령을 받고 제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결국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왕이 되었다 (삼상 15:1-35).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22-23)고 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의 가드 방백 아기스에게 망명하였을 때, 시글락 성을 부여받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여 아말렉을 비롯한 그술과 기르스 사람들을 쳐서 그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고 물건만 탈취하여 아기스에게 주었다. 아말렉, 그술, 기르스 등은 유다 남방과 애굽 사이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반유목민들로서 목축보다는 약탈을 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마치 일본의 왜구가 삼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를 공격하던 것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아기스에게는 유다 남부를 공격하여 유다 사람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을 공격하였다고 하였다 (삼상 27:8-10).

이제 아말렉은 다윗이 블레셋을 따라서 이스라엘에 침공하게 된 이 절호의 찬스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아말렉은 유다의 남방 즉 네게브 지역 (그렛 사람의 남방, 유다에 속한 남방, 갈멜 남방, 14절)을 차례로 휩쓴 다음에 다윗의 시글락에 침공하였다. 다윗이 그렇게 아말렉을 보는 족족 다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은 여전히 강성하였던 것이다. 마치 잡초 같이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는 것이었다. 아말렉은 시글락을 침공하여 탈취할 수 있는 모든 물건과 사람은 다 탈취하고, 성은 철저하게 불태웠다.

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and had taken captive the women and all who were in it, both young and old.         They killed none of them, but carried them off
        as they went on their way.
사람이 이동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있고,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있다. 전쟁을 할 때, 군사들이 이동하려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가지고 가고,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은 불태우게 된다. 아말렉은 물건과 짐승들과 사람들은 하나도 죽이지 않고 탈취했다. 물건들은 자기들이 사용하고, 짐승들은 자기들이 잡아먹고, 사람들은 종으로 삼거나 아내로 삼거나 이웃 나라에 팔려고 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아말렉 부류들은 철저히 죽임으로써 그들에게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으나, 아말렉은 다윗의 사람들의 가치를 알았기에 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When David and his men came to Ziklag,
        they found it destroyed by fire
        and their wives and sons and daughters taken captive.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가족들의 시신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가족들이던 가축이던 중요한 물건이든 간에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말렉의 습관을 아는 그들로서는 그들이 이 모든 것을 탈취했음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물건들과 가족들을 나중에 다 찾은 것을 우리가 다 알기에 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시글락에 더 이상 살지 않고 유다로 올라가게 하는 준비를 하신 것이 아닐까? 시글락은 임시 처소이다. 다윗의 상태도 임시적인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도와 블레셋을 치는 데 사용되지는 못할망정, 블레셋을 도와 이스라엘은 치는 데 사용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하나님은 이제 아말렉으로 하여금 다윗을 공격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이제는 시글락에 더 이상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신 것이다.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So David and his men wept aloud
        until they had no strength left to weep.
이 상황 가운데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한 최초의 일은 방성대곡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울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이렇게 보면 우는 것은 매우 당연한 반응이다.

순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다 이해될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현실만 보고 괴로워 하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의 손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실패와 오늘의 암담함과 오늘의 답답함과 오늘의 실망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과정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묵해야만 한다.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David's two wives had been captured
        --Ahinoam of Jezreel and Abigail, the widow of Nabal of Carmel.
사무엘상 기자는 다윗의 두 아내, 즉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사로잡혀갔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다윗의 입장도 다른 600명의 입장과 같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David was greatly distressed
        because the men were talking of stoning him;
        each one was bitter in spirit because of his sons and daughters.
        But David found strength in the LORD his God.
그 다음에 다윗의 600명의 사람들이 한 반응은 무엇인가? 울음으로도 물론 슬픔은 가시지 않았다. 다윗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십수 년을 따라다녔지만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다.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 거하기 시작한 때부터 (삼상 22:1-2) 모여들기 시작한 이 사람들은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윗을 장관으로 삼고, 다윗을 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다윗과 함께 풍찬노숙의 나날들을 보내었다.

그러나 이제 가족들이 없는 입장에서, 아내와 아들들과 딸들이 없는 입장에서 그들은 다윗에게 모든 것의 책임을 물어서 그를 돌로 쳐서 죽이고자 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다윗이 지도자로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최소한 200명이라도 수비할 군대를 남겨 두어야 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윗은 아기스에게 모든 군대를 징집 당했던 것이고, 그리하여 수비할 여유가 없었다. 군중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고, 그 소리는 급기야 다윗을 돌로 치자는 말로 변하였다. 군중심리의 분위기는 너무나 무섭고 걷잡기 힘든 것이어서 다윗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의해서 실제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마땅히 서로 격려하고, 다윗을 격려하여 아말렉을 추적하여 가족들을 찾아야 하겠지만, 지금 이 600명의 무리는 하마터면 폭도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감정에 휩쓸리어 여론 재판의 성격으로 치달아 돌을 들어서 다윗을 죽이는 상황이 자칫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윗을 대신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매우 군급해졌다. “군급(군색할 窘 급할 急: 상황이 위급하고 답답한 상태)하다”라는 말은 “난처하고 곤란하고 괴로운 입장에 빠지다”라는 말이다. 원어적인 의미를 직역하자면 다윗이 “매우 좁은 장소에 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사울이 사무엘의 영을 지하에서 불러 올려 그의 상황을 설명할 때에도 사용되었었다 (삼상 28:15). 사울도 군급한 상황 가운데 있었고, 다윗도 역시 군급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상황을 대처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전쟁의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면 다윗은 이미 자신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가족들을 잃고, 그의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어서 사울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

다윗이 아무리 용기가 있는 용사라 할지라도 자기의 600명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600명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도 자기의 가족들을 잃었기에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니 그들과 동일한 입장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로부터 도망을 친다면, 열 걸음도 못가서 돌에 맞아 죽을 것이 뻔하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사무엘상 기자는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직역하면 “다윗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여호와 안에서”라는 말 “베 예흐바”와 과 “용기를 얻었다”는 두 단어이다. “용기를 얻었다”는 말의 원어는 “하짜크”로서 원래의 의미는 “달라붙다,” “꼭 잡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다윗이 여호와 안에서 꼭 붙잡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다윗에게 군급한 상황을 허락하셔서, 그를 군급한 상황으로 몰아넣으시는가? 그로 하여금 다시 한번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그분만을 붙잡도록 하시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오직 하나님만 붙들도록 하시려고 나를 군급한 상황으로 몰아넣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빨리 이러한 상황을 깨닫게 되면 그 상황을 이겨내기가 더 쉬운 것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욥은 여호와를 욕하고 죽으라는 자기 아내에게 대답하기를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뇨”라고 답하였다 (욥 2:10). 다윗은 이 상황 가운데서 오직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그분만을 붙들어야 하는 것을 알았다. 그의 눈은 여호와를 향했던 것이다. 다윗의 눈의 여호와를 향하자, 그의 600명의 사람들도 다윗의 눈을 따라서 여호와를 향하여 눈길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두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난다. 하나는 모세가 가나안 지방으로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낸 이후에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온 백성이 모세를 죽이고자 하였던 상황이다. 밤새 울고 통곡한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는가?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였다. 그대 모세와 아론이 어떻게 하였는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민 14:1-5).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돌로 치려면 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백성의 모든 원망과 분노와 격정을 그의 뒷머리로 받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와 아론을 대신하여 발언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상황을 타개하였던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께 끌고 와서 생사여탈의 물음을 던진 상황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성난 폭도들이 되어서 그들의 마음이 여인에게서 예수님께로 향할 때, 예수님은 그 포악한 마음들을 예수님의 몸에서 예수님의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손가락에서 땅으로 옮겨가신 것이다. 그들은 죽입니까? 살립니까? 하면서 계속 물었지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마음을 자신들의 양심으로 돌이키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은 몸을 굽히셔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성난 그들은 돌을 들어서 여인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까지도 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만 하시고, 아무런 다른 말씀도 그들에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최소의 말을 하며 침묵으로 일관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의 방법일 때가 많다. 말을 그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무장시켜 주시는 것이다. 말을 하면, 그 말이 말을 낳고, 변명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힘들기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부풀려지고, 오해되고, 다시 해명하고, 감정이 실리고, 결국은 여론 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멈추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바른 방법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저 다윗처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붙들며 힘을 얻고,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께 철저히 의지하며, 예수님처럼 돌로 공격하는 무리들에게 부드러운 혀로 그들의 양심을 바라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양심이 굳거나, 나의 양심이 바르지 못하다면 예수님처럼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 양심이나 바르게 하라는 말을 곧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Then David said to Abiathar the priest, the son of Ahimelech,
                "Bring me the ephod."
        Abiathar brought it to him,
다윗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묻는 방법으로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 제사장의 의복인 에봇에는 흉패가 있고, 그 흉패 위에는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있어서 여호와의 뜻을 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상 28장의 사울도 역시 군급하였다. 5절부터 6절에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라고 되어 있다. 사울은 지하에서 올라온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나는 심히 군급하나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15)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다윗에게 제사장 아비아달이 있고, 그에게 에봇이 있고, 그리하여 우림과 둠밈으로 물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상황인가? 다윗이 더 나은 종교적인 시스템과 도구와 인프라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것은 다윗은 하나님과 열리고 신뢰하는 의사소통 (open and trusting communication)을 할 수 있었지만, 사울은 그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울의 고백처럼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는 것이다. 다윗과 사울의 가장 다른 점은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것이다. 삼손도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을 때에는 아무런 힘을 발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다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삿 16:28-30).

그러므로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우 예민하게 유지하면서 살자. 현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위태위태한 상황인가? 아니면 완전히 막혀있는 상황인가? 사울은 용맹한 장수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떠나자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다윗은 그러나 군급한 상황에서 그의 여호와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꼭 붙잡았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가? 우리를 공격해오는 아말렉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고 달아나도 다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만을 붙들고 힘을 얻는 우리들이 되도록 하자.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and David inquired of the LORD,
                "Shall I pursue this raiding party?
                Will I overtake them?"
                "Pursue them,"
        he answered.
                "You will certainly overtake them
                and succeed in the rescue."
그리하여 다윗은 여호와께 아말렉 군대를 쫓아가면 따라 잡겠는지를 물었고, 여호와께서는 쫓아가라고 하시면서 따라 잡을 뿐만 아니라 잃은 모든 것을 다 찾을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우리의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표현한 대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엡 3:20)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묻기를 주저하지 말자. 만약에 관계가 무너졌다면 다시 시작하자.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자.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녀들을 언제나 따스한 팔로 맞아 주신다.

9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David and the six hundred men with him came to the Besor Ravine,
        where some stayed behind,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for two hundred men were too exhausted to cross the ravine.
        But David and four hundred men continued the pursuit.
그래서 다윗은 급히 600명을 데리고 적들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이 브솔 시내에 이르자, 일부가 그동안의 쌓은 피곤으로 인하여 추격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때로는 같은 행군 속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능하면 천천히 가야하지만, 상황이 이럴 때는 일부는 뒤에서 수비를 감당하고, 일부는 앞에서 공격을 감당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하향평준화로 인하여 공동체가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오늘 우리가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바르게, 강하게, 긴밀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열리고, 또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 있는가?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도록 기도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면, 다시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하자.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자.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주의 자녀들이 되자.

특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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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극복하는 신앙 (5/4/05) (빌립보서 1:12-24) 정순진 목사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이 땅에서의 삶은 그 양상은 다를지라도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 속에서 그 같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 지를 더듬어 보며 ...
    Date2005.05.07 By박상원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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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56) (4/27/05)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27:1-12)

    제 56 과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27:1-12)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자기의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블레셋 가드의 방백 아기스에게로 정치적인 망명을 하였다. 아기스는 다윗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울의 이스라엘...
    Date2005.05.04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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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55) (4/20/05)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26:17-25)

    제 55 과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26:17-25) 오늘 사울과 다윗 사이에 나눈 대화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더 이상 보지 못하였다. 사울은 다윗에게 회개하는 듯 하였지만, 온전한 회개와 화목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
    Date2005.04.27 By최정인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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